[어린이책] 아버지를 잃은 다섯 살 소년의 슬픔 "모든 게 어제와 같지만, 이젠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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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영원’이라는 추상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끝없이 이어질 듯한 미로를 헤매는 아이의 표정이 애처롭다. [사진 봄나무]

영원한 이별
카이 뤼프트너 글
카트야 게르만 그림
유혜자 옮김, 봄나무
30쪽, 1만1000원

가까운 이들의 죽음, 어른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이다. 어린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지난해 독일 국영라디오방송국(DLF) 선정 ‘어린이를 위한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힌 이 그림책은 아버지를 잃은 다섯 살 소년의 눈높이에서 ‘영원한 이별’을 묘사하고 있다.

 끊어진 연을 끼고 다니는 아이는 자신을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우리 집 앞 꽃들은 어제와 똑같고, 길거리 신호등도 똑같고, 길 건너편 작은 가게도 언제나처럼 똑같지만, 이제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고 담담히 말한다. 어른들이 말하는 ‘영원’이라는 시간은 끝없이 구불구불 이어진 미로를 상상하는 걸로 가늠한다. 사람들이 갑자기 수군대거나, 처량한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이유도 없이 웃기려 든다며 아이는 난감해 한다. 엄마는 있는 그대로 말해준다. “우리가 앞으로 옛날처럼 사는 건 영원히 불가능할 거다. 그래도 꿋꿋이 살아가야 한다.”

 어린이 독자에게 ‘쓴 약’을 먹이는 책이다. 어떻게 마무리하려고 이러는 걸까. 끊어진 연을 하늘 높이 날리며 아이는 말한다. “내가 아빠라고도 할 수 있어요. 내 몸의 아주 작은 부분이 아빠니까요. 영원히.” 이것은 유한한 운명의 우리가 아이를 낳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이를 꼬옥 안고 책을 읽어줄 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너이고, 네가 나란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영원히 헤어지게 될 테니, 지금 더욱 사랑하자’고.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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