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여자의 웃음에 약한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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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오래 전, 삼십대 여성의 고충을 들은 일이 있다. 거래처 남자 상사의 저녁 식사 초대에 응한 일이 있는데 그의 술자리 매너가 깔끔하지 못했다. 그녀는 불쾌감을 느꼈지만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그 자리를 마무리지었다. 그 후 남자는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마음 같아서는 단칼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중요한 거래처라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식사 제안을 거절할 때마다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불가피한 사정을 내세웠다. 그런 식으로 서너 번 사양하면 여자들은 서로 알아듣는다. 함께 식사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남자들은 여자의 간접 어법이나 완곡한 돌려 말하기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핵심만 정확하게 건네는 남자의 말하기 방식과 머뭇거리며 돌아가는 여성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자의 언어를 오해한다. 저녁 식사를 못하겠다는 말의 내용보다 그녀가 건네는 상냥한 말투를 먼저 인지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남자들이 대체로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밥을 사주겠다는데 감히 거절할 리가 없다고 믿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고, 엄마의 왕자로 자라나고, 남성 중심인 사회에서 살면서 나르시시스트가 되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옳고 선하고 정당하며 특별하다고 믿는 나르시시스트들은 그 반대 감정을 바깥으로 투사한다. 조금만 자존심을 건드려도 폭발하고, 자신이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그들의 나르시시즘을 부추기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생존법을 발전시켜 왔다. 미소는 가장 강력하다. 남자들은 얼마나 여자의 웃음에 취약한지 음식점에서 주문받으러 온 여종업원의 미소도 자기에 대한 특별한 호감으로 여긴다.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벌써 사랑의 도피행을 꿈꾼다. 여자의 웃음이 사회적 방패거나 서비스 상품이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한다.

 최근에 젊은 친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여자가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행동’이라는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재미 삼아 한 그 조사에서 1위는 ‘한번 웃어줬더니 자기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남자’가 뽑혔다. 요즈음 젊은 남자들도 나르시시스트이지만 행동방식은 좀 다르다고 들었다. 마구 들이댔다가는 스토커가 되고, 속맘을 잘못 입에 올렸다가는 성추행범이 되는 분위기 탓인지 예전 남자들처럼 돌진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을 때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를 갖추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