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이란」 여인들의 「차도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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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바레인」 토후국에서 떠난 여객기가 「페르샤」만 위를 날 때 내려다보니 이 지역은 세계의 석유중심지라 수많은 나라의 「오일·탱커」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윽고 「이란」남쪽의 「자그로스」산지가 동서로 뻗어있는 모습이 조감도로 내려다보이는데 높은 능선에 희디흰 눈이 덮여있는 것은 그지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퇴색한 사막지대에 이렇듯 절후한 백색이 보이는 것은 초 미술적인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그 옆에는 또 짙푸른 호수까지 내려다보이니 이루 말할 수없이 신비롭다. 이 호수는 하늘의 거울인 듯 그 푸르디푸른 하늘의 얼굴이 고스란히 비쳐 보이는 것 같다.
얼마 뒤 여객기는 옛 「페르샤」의 유서 깊은 도시 「시라즈」에 내렸다. 「바레인」섬에서 불과 40분만에 이 나라에 왔는데 이 도시는 해발 1천 6백 30m에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겨울철이라 공항 사무실에는 「오일·스토브」가 활활 타고 있다. 더운 사막지대를 쏘다니던 여름나그네가 느닷없이 겨울나그네가 된 것이다.
이 「시라즈」시는 내가 1963년 여름에 왔었으니까 벌써 13년이 되었지만 도심지는 별로 바뀐데가 없어 보인다.
다만 「팔레비」 국왕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오색이 아롱진 전등으로 관청 「빌딩」을 장식했는가하면 가로수에도 「크리스머스·트리」처럼 전구장식을 한 것이었다.
이 나라는 군주국이라 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같이 많은 돈을 들여 거리를 장식했는데 내 생각엔 큰 낭비로 느껴졌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의 모습을 보거나 이 도시의 주택들을 보더라도 빈부의 차는 여전히 심하여 가난한 사람이 많아 보이니 말이다. 부자와 걸인의 「콘트라스트」랄까 돈이 많은 사람은 왕후귀족 못지 않게 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종보다 못한 신세로 사는 것이 피부로도 느껴진다.
「이란」은 자유로운 개혁파인 「시아」파를 믿는 「이슬람」교의 나라여서 「유럽·스타일」의 「미니·스커트」도 많이 입지만 얼굴만 얄팍한 천으로 가리는 「차도르」를 쓰고 다니는 여자 등도 많이 보인다. 이 「차도르」는 주로 가난한 여성들이 쓰는가 보다. 이 나라 사람은 「아시아」사람보다는 「유럽」사람 같은 뼈대에다 살갗을 지니고 있어서 「유럽」에 온 듯한 인상을 준다.
사진을 찍을 양으로 길가에 지켜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각선미가 아름다운 여자가 「차도르」를 쓰고 온다.
「셔터」를 누르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가 노한 소리를 지르기에 그 쪽을 돌아다보니 사진을 찍지 말라고 꾸짖는 것이었다. 나는 부리나케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전에 왔을 때 이미 들은 이야기지만 미국 주간지 「라이프」의 「카메라맨」이 「차도르」를 쓴 여자를 찍다가 군중에게 둘러 싸여 뭇매를 맞게 되었을 때 가까운 병원으로 피했으나 쫓아온 군중들에게 붙잡혀 매를 맞고 죽었다는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차도르」를 쓴 멋진 여성을 사진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내일 다시 찍어 보기로 했다.
해도 지려고 하기에 그전에 나를 반겨준 사람이 행여 아직도 살고있을까 하여 찾으니 마침 집에 있다가 나를 보자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는 여전히 가난한 살림을 하기에 그 동안 석유가 쏟아져 나와 모든 국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졌을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석유는 한없이 나와서 돈을 벌어들이지만 일부 특권계급이 치부를 할뿐 서민들에겐 이렇다할 혜택을 주지 않는다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는 종교적인 깊은 신앙으로 사랑한다지만 물질적으로는 서로 독차지하려고 다투고있다고 볼 때 경제시책을 균등하게 하려면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이 집에 여장을 풀고 쉬면서 아까 사진 찍다가 호되게 욕을 먹은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너털웃음을 한바탕 터뜨리고는 그전에도 사진을 찍지 말라고 그렇게도 타일렀었는데 여전히 고집을 부린다고 하며 섣불리 찍지 말라고 다시 타일러 주었다.
그러면서 이 「차도르」를 둘러싼 이야기는 많지만 「이란」의 어떤 남자는 「차도르」를 쓰고 여자공동 목욕탕에 들어가서 「누드」를 보다가 경찰에 붙들려 6개월 징역을 치렀다고 하면서 「차도르」는 큰 화근이 되는 일도 있으니 여자를 사진 찍더라도 「차도르」를 쓰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라고 단단히 충고해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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