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바레인」의 젊은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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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바레인」섬을 쏘다니다가 지쳤기에 사막 속의 샘 가에서 쉬며 샘물을 마시니 한결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물맛이 찝질한지 속이 개운치 않았다. 이 섬엔 샘이 많은데 한결같이 물이 찝질한 것은 옛날에 바다 속에서 산호가 자라서 물위로 올라와 이루어진 섬인 만큼 염분이 섞여 있거나 아니면 산호의 성분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샘 가에서 사귄 이 나라의 젊은 여성은 내가 낮선 나라 사람이라고 자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 「바레인」섬에서는 이미 5만여 년 전의 유물이 나온다고 자기들의 문화를 자랑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4세기에 여기 왔던 「그리스」의 어떤 여행가는 그때의 모습을 기록했는데 『갖가지 과실이며 채소들이 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 문화를 지녔던 여운이나 기름졌던 땅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여성은 창조란 매우 미묘하다고 말했다. 「바레인」섬을 비롯한 「아라비아」사막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주를 받아온 땅으로 생각돼 왔는데 감쪽같이 그 밑에다가 「검은 황금」인 석유를 간직해두고 있었다고 하며, 이 세계는 오랜 역사 속에서는 모두가 「알라신」(「이슬람」교의 절대신)의 균등한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은혜는 「이슬람」교도들이 줄곧 옮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받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슬람」교의 우위성을 부르짖었다.
거의 모든 「이슬람」교 나라들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현상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여성에게서 느꼈다. 이 「바레인」토후국은 이웃의 여러 「이슬람」교 나라가운데서는 1929년 맨 먼저 여학교를 새운 만큼 어떤 나라보다도 여성들이 진취적으로 보였다. 현모인 「솔베이지」형보다는 자유와 해방을 받드는 「노라」 형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라」형들에서도 방종적인 자유연애결혼사상은 보기가 어렵다.
전통적으로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슬람」교의 신앙 때문이라고 보는데 이것은 이 나라여성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도 종교이성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성들에겐 한결같이 절도가 있고 덕성이 풍부해 보여 정숙해 보인다. 오랜 종교생활이 마치 조각가의 솜씨로 이 나라 여성의 모습을 조형하듯 이러한 종교형으로 이룩한 것이라고 본다.
어떤 「이슬람」교 나라보다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지닌다고 하지만, 이 나라 여성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 성녀 같은 인상을 주는데 그것은 생활의 모체를 이루는 것이 강렬한 신앙이기 때문임은 두말할 것 없다. 역사가 「토인비」는 문화의 최고 형태가 종교이며, 또한 종교만이 이 비극적인 세계를 구원한다고 말했는데 어쩌면 이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세계는 거의 첨단을 가는 유행을 따라서 젊은 남녀들은 멋을 부리고 쾌락을 누리기에 여념이 없지만, 이 나라는 석유의 이득으로 흥청거리며 진탕 뚜드려 먹고 놀 법도 한데 경건한 종교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보노라면 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우리 나라 젊은 사람이 본 받을 점이 많아 보였다.
경제발전은 물론 중요하지만,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의 생활이 진실해야 하리라는 것을 이 「이슬람」교 나라에서 더욱 절실히 느꼈다. 이 나라가 아무리 자유로운 개혁파인 「시아」파를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모든 생활규범이 「코란」에 입각해 있는 만큼 건전할 수밖에 없다. 어떤 늙은이는 요새 자기 나라 젊은이들이 방종적인 자유주의에 휩쓸려 타락한다고 한탄하지만, 내 생각엔 이 나라 젊은이는 여전히 건전해 보였다.
여기서 사귄 많은 이 나라 사람과 외국사람들에게서도 이 「바레인」토후국에는 범죄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며칠 머무르면서 쏘다녀보아야 범죄는 물론이며 사회질서가 문란해 보이는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땅속에선 「알라」신의 최대의 축복으로 석유는 펑펑 솟아 나오고 이 나라 사람의 마음은 그지없이 선량하니 지상천국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도원경이나 「토머스·무어」의 「유토피아」는 바로 이러한 나라라고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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