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이라크 재건 박람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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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나흘간 열린 이라크 재건박람회. 영국과 미국 업체들이 나란히 참석했다.

"두 나라는 결코 떨어지지 않네요." 4일부터 7일까지 암만에서 열린 '이라크 재건 박람회'에 참가한 한 이라크 기업인 아흐마드는 "육로로 900km를 달려왔는데, 이곳에서도 미국과 영국의 위세에 눌릴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가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무리가 아니다. 미국과 영국 업체를 위한 행사라는 인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박람회는 IFP라는 다국적기업이 미국과 이라크 정부의 후원 아래 주최했다. 44개국에서 980여 업체가 참가했다. 이라크 재건사업에 진출하려는 외국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중장비.건설자재.가전제품.보안장비 등이 주력 상품이다. 한국에서도 15개 업체가 참가했다. 이라크 기업인 6000여 명이 참가해 외국업체들이 상담을 벌였다. 원래는 이라크에서 열려야 하나 치안문제 때문에 암만에서 열렸다.

박람회장 외부는 참가국들의 깃발이 곳곳에 걸려 있지만 미국과 영국은 항상 붙어 있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곧 미국.영국.이탈리아 등이 있는 B관이다. 한국 등 아시아.동유럽 국가 업체들의 A관과 아랍과 유럽의 국가들이 모인 C관을 좌우로 B관은 박람회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B관에는 80개 미국.영국 참가업체들의 부스가 늘어져 있다. 각 업체 위에는 영국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줄을 맞춰 늘어져 있다. 개막식의 테이프 커팅도 B관 입구에서 열렸다. 일부 이라크인은 "전쟁과 점령도 같이 하더니만 재건의 노른자도 함께 차지하겠다고 한다"고 불평한다.

미국과 영국 기업 가운데는 보안업체가 많다. 치안불안으로 시장이 유망한 보안산업에 진출하려는 것이다. 미국 알파인사는 방탄차량과 펑크가 나도 계속 달릴 수 있는 타이어를 선보였다. 영국 SDA 프로텍트사의 주력 상품은 망원경과 폐쇄회로TV(CCTV)다. 아흐마드는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점령 후 치안을 책임지지 못하고는 치안 관련 산업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건설 등 다른 부문도 미국과 영국업체들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B관은 제품설명을 듣고 상담을 하려는 이라크인들로 붐볐다. 미국과 영국이 사실상 재건사업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박람회장에선 한국 기업인, 외교부 및 KOTRA 직원, 이라크 정부관리들이 모여 한국 기업들의 이라크 진출 시기와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장기호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는 "지난 1월 총선 이후 저항이 줄고, 새로 들어설 과도정부가 민심을 얻기 위해 사회간접자본 시설 등 각종 재건사업에 나설 것"이라며 "한국 업체들도 참여 방안을 찾을 때"라고 말했다. 이라크 공공사업부의 아야드 알사피 차관은 "많은 외국 기업이 이라크 내에 에이전트를 두고 각종 사업에서 입찰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장 대사는 "이라크 내의 믿을 만한 에이전트를 서둘러 찾아야 하지만 대형프로젝트는 에이전트만 믿지 말고 직접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라크 진출의 교두보인 요르단 암만의 신연성 대사는 "아직까지는 이라크에서 직접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주변국을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만=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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