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순화의 문제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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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문교부는 외국어의 남용과 함께 날로 황폐해 가는 우리말들을 순화시키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는 일어의 잔재를 씻기 위해, 6·25를 치르고 난 후에는 동란 중에 퍼진 살별하고 상스런 말들을 정화하기 위해, 또 최근에는 지나친 외국어의 남용을 막기 위해 수백 회의 국어순화운동이 실시됐지만, 그 성과는 명동의 간판이 증명하듯 허망하기만 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말처럼 외국의 영향으로 자주 오염된 예는 별로 많지 않다. 그 동안 수없이 겪은 외세의 침략 때문이라고 핑계할 수도 있겠지만, 국민 특히 지식인의 의식과 관련, 국어순화에 대한 인식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지식인가운데 일부러 서구어를 섞어 말하는 것을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알고, 젊은 세대사이에서는 끔찍하고 야비한 말을 하는 것을 도리어 우쭐해 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지식인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외국어가 정확한 의미도 모르는 채 대중에게 전달될 때 생겨날 부작용은 몇 차례의 전란보다도 더욱 심각한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예를 지난날 한문을 숭상, 우리말과 글을 업신여긴 석조 선조의 완고한 선비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대안 없는 순화운동도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외국어나 상스러운 말은 흔히 논밭 가운데 솟은 「잡초」에 비견된다. 잡초는 벼나 보리의 생육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뽑아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언어의 경우는 외국어나 은어·비어를 강제로 사용 못하게 한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언어는 생활과 함께 자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정확하고도 아름다운 우리말이 나와 줘야한다. 그 동안에도 강제 또는 반강제적인 「우리말 찾기 운동」 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용두사미격으로 끝나고 만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범람하는 외래문화 속에서 국문학이 발전하지 못한 것도 국어순화가 되지 못하는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언어를 되찾기 위한 고전문학의 발굴과 함께 널리 읽힐 수 있는 글과 문장을 발굴해서 그 사용을 제도적으로 장려하는 방안이 함께 모색돼야 할 것이다.
오늘의 영어가 세계적으로 훌륭한 언어로 신임을 받게 된데는 「셰익스피어」의 공로를 부인할 사람이없을 것이다. 우리도 국어를 아름답게 갈고 닦아 주옥같은 한국말의 실증을 보여준 작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표준말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서울 중산층의 말을 작가 염상섭은 그의 단편 『두 파산』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그 수효가 너무도 적었다는데 있다. 따라서 최근 작가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창작 문예기금 등의 예술성 높은 작품의 출현에 실질적으로 기여되어야 하겠다.
오염된 언어를 순화시키는 장기적 방법의 하나로 초·중·고교를 통한 언어순화 교육의 필요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각급 학교 국어교육은 주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교육으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다. 한편 교사의 언어실력도 순화된 우리말을 실질적으로 학생에게 가르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국어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의 순화된 국어사용이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 신중하게 재교육 등으로 대처해야할 문제다.
해방이후 국어순화와 외래어 표기법의 연구에 전념해온 전문가들은 재정적인 뒷받침과 함께 이를테면 「집현전」과 같은, 대통령 직속 관민합동 상설연구기관설립을 고대하고있다. 이 같은 제도는 현재 「프랑스」같은 나라에서도 실시되어 큰 효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문제에 앞서 전체 사회의 분위기가 국어를 아끼고, 바르고 아름답게 가꾸려는 자각과 노력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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