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와 범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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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은행강도사건은 아직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혹시나 했던 단서들도 열쇠가 되지 못한 것 같다.
흔히 추리소설들을 보면 범인은 독자들의 시선과는 정반대의 곳에 숨어있다. 물론 그것은 재미를 의식한 소설의 세계이긴 하다.
그러나 이처럼 사건 추리의 방향이 의외의 곳으로 반전되곤 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유능한 형사들은 모든 범죄의 그와 같은 속성을 알고 있어야한다.
TV에 등장하는 형사「콜롬보」나, 「실록·홈즈」를 보면 무엇보다도 끈질긴 것이 수사의 최고 요령이다. 가령 어떤 용의자가 「알리바이」를 제시했을 경우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은 서두르지도 않는다. 성급한 추측이나 가정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사건의 주변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한다.
남 보기에는 쓸모 없는 듯한 자료까지도 여러모로 추리를 해본다. 「코넌·도일」의 단편 『붉은 머리조합』을 보면 바로 그 두발빛깔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은행강도를 찾기 위해 「붉은 머리 조합」을 착상하는 것이다.
「런던」경시청의 형사들은 사건현장을 한번만 보고도 그 범인의 성격을 짐작한다. 수법이 초범인지 재범인지 정도 첫눈에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한 사회학자는 실제의 형사와 작품 속의 탐정들을 비교해 본 일이 있었다. 작가의 상상력은 바로 현실에서의 응용에서도 훌륭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대체로 범인들의 성격이나 판단력은 그 뒤를 쫓는 사람의 추리력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더 인내와 치밀성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우리 경찰은 바로 그 끈기와 성실성에서 모자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시민의 제보에 귀를 기울이는 수사태도는 어딘지 그런 인상을 준다. 범인은 저 뒷전에서 그런 경찰을 보고 웃고 있을지 모른다.
「콜롬보」형사는 언제나 여유 있게 사건의 단서에 접근한다. 한번 의심에서 풀려난 사람도 문득 찾아보곤 한다. 수사의 대상에 오른 사람도 그를 쫓는 사람의 그림자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 만큼 자연스럽게 「콜롬보」는 범죄를 추적한다.
우리 경찰도 너무 성급하거나 속단하는 것으로 오히려 범인의 추적을 받지 말고, 끈기와 계보로써 사건에 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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