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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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는「루스벨트」가 6세 때였다.
아버지는 그를「클리블랜드」대통령에게 데리고 가서 뭔가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도록 부했다.
대통령은 소년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아가야 매일 밤 자기 전에 하느님 제발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지 말아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한다.』
대통령의 자리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아무나 견뎌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자리에 지난 74년7월「이사벨·페론」이 올랐을 때 온「아르헨티나」는 축제기분에 들떠있었다. 「이사벨」자신도 마치「신데렐라」나 된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마이어」인도의「간디」, 「스리랑카」의「반다라나이케」등 여성수상은 더러 있다. 그러나 여성대통령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우쭐할만도 했다.
더우기 그녀는「나이트·클럽」의 무희출신에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그녀를 고용했던 무용단장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니까 뛰어난 미인도, 무희도 못되었나 보다.
그러나「이사벨」이 대통령에 오른 것은「아르헨티나」를 위해서는 물론이요, 그녀 자신에게도 다시 없는 불행이었다.
「이사벨」의 대통령취임 1주년을 맞이한 날, 당지의「라·오피니온」지는『조국은 사기에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다. 어떤 생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 고뇌의 시기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고 대서특필했다.
「이사벨」은 독학으로 고전「발레」·「피아노」·불어 등을 배울 만큼 총명했다. 그러나 지난 21년 동안 3년에 한 번씩「쿠데타」가 일어났던「아르헨티나」의 대통령감은 도저히 못되었다.
실의의 망명 중에 있던「페론」과「파나마」의 한「나이트·클럽」에서 처음으로 만난 55년 이후 61년에 결혼하고 74년7월 대통령이 되기까지「페론」으로부터 톡톡히 정치교육을 받았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나 보다.
지난 1년 동안에 물가는 3백%나 뛰었다. 이런 보고를 받고도 그녀는『답답한 것들!』하고 쏘아댈 뿐이었다.
그녀가 겪어야했던 위기의「클라이맥스」는 지난해 7월에「로페스·레가」후생상 겸 대통령비서의 추방을 내걸고 일으킨 노동총동맹의 파업이었다.
「이사벨」과「일심동체」의 관계였던「로페스」를 잃은 다음부터는 집무실에 나가지 않는 날이 거듭되었다. 60일간 이상의 장기휴양을 요청한 적도 있다.
그후 최근에 이르기까지「이사벨」은 대통령이라기 보다는 완전히 실의에 잠긴 한 여성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이사벨」은 산중의 한 별장에 연금 되어 있다. 그녀에게는 공금유용의 혐의도 있다지만, 아무래도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는게 최대의 과실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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