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독립의지」…1932년4월29일 그날의 홍구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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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윤봉길 의사가 1932년 상해 홍구공원에서 거사할 당시는 약관의 24세 청년. 그는 1908년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윤황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치하에서 성장한 그는 마을에서 야학을 열고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농민계몽·농촌부흥운동을 벌인 모범청년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격심해지자 1930년 고향을 떠나 상해로 망명, 김구선생과 접촉했다.
윤 의사는 상해에서 한국애국단에 가입, 독립운동을 벌였으며 32년4월29일 상오11시40분 홍구공원에서 개최된 저들의 천장절 기념식장에 단신으로 잠입해 식전에 폭탄을 두척했다.
이 자리는 바로 일제가 중국대륙을 침략한 전승축하기념식전이기도 했으며 상해파견군 사령관 백천의칙 대장을 비롯해 사단장·공사·거류민단장 등이 식단에 참렬했었다.
그래서 윤 의사의 폭탄으로 백천대장·하단정차거류민단장이 폭사하고 제3함대사령관 야촌중장·제9사단장 식전중장·중광규 공사 등이 중상을 입었다.
윤 의사가 식전 앞으로 나가며 폭탄을 던지자 헌병들이 몰려들어 윤 의사를 쓰러뜨리고 짓밟았으며, 한 사진에서 유혈이 낭자한 윤 의사의 얼굴은 바로 그 직후의 모습이다.
윤 의사는 이어 6월21일 대판에 이송돼 군법회의에서 사형신고를 받고 12월19일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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