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교포와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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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련 땅 「사할린」에 버려진 교포들의 30년 망향의 꿈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아직은 밝은 전망을 가질 이렇다할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할린」에 우리 교포가 살게 된 것은 주로 2차 대전 중 일본의 강제징용에서 비롯된다. 일본령이었던 화태가 대전 후 소련령 「사할린」이 됨에 따라 이들은 그곳에 버려진 채 남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재일동포에 대해서와 꼭 마찬가지로 일본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더우기 한소간에는 국교가 없기 때문에 일본정부의 중개노력 없이는 이들의 귀환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현실적 책임에 비해 지금까지 일본이 취해 온 중개노력은 결코 충분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한국정부가 송환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느니, 귀환 교포를 전원 인수해야한다느니 하는 조건을 내세우며 성의있게 대소교섭을 벌이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사할린」교포의 귀환문제는 소련의 소극적 태도와 북괴의 치열한 방해공작으로 쉬운 일이 아닌 터에 일본마저 이런 태도였으니 제대로 해결될 리가 없었다.
현재 「사할린」에는 약 4만명의 우리동포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약 65%가 북한적을 갖고 있고 25%가 소련적이며 약 10%가 무국적자라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으로 귀환을 희망한 사람은 67년에 7천명이던 것이 작년에 재확인 결과 4백62가구의 1천8백41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동안 죽은 사람이 많은데다 귀환희망자에 대한 소련당국의 박해와 북괴의 협박·폭행 등 방해공작이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망향의 일념으로 30여년을 버티어 온 동포들의 어려움이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사할린」억류귀환 한국인회에 보내온 「사할린」교포들의 편지에는 이들의 절박한 처지와 절망감이 생생하게 호소되어 있다. 지금같이 귀환교섭이 차일피일 시간만 끌다가는 이들은 모두 지쳐 절망할지도 모른다.
「사할린」교포들의 편지에 의하면 일본이 이들의 일본입국만 허용하면 소련당국은 이들을 출국시킬 의향이란 것이다. 그러나 그간 소련정부의 이 문제에 관한 공식반응은 극히 냉담했다. 더구나 최종 목적지를 한국으로 한 귀환에 대해선 말도 붙이지 못할 정도였다.
이러한 소련의 냉랭한 태도는 다분히 북괴의 방해공작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일본이 이들을 일단 모두 받아들이는 조건이 아니면 대소교섭이 진척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한다.
무조건 일본이 받아들이겠다해도 대소교섭이 될지 말지 모르는 판에 이들을 한국이 모두 인수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편다면 이는 중개역을 않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지금은 우선 귀환을 희망하는 「사할린」교포들을 소련 땅에서 나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일단 나오기만 한다면 고국에 돌아오겠다는 동포를 마다할 조국이 어디 있겠는가.
또 그들은 재일동포들과 똑같은 경로로 당시 일본 땅이었던 곳에 끌려간 사람들인 만큼 일본거주를 희망한다면 그 또한 허용되어야 마땅할 줄 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일본정부가 귀환을 희망하는 「사할린」교포들을 최종 목적지를 따지지 않고 일단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은 주목할 만한 진전이라 하겠다. 이러한 역사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본은 대소교섭에 좀 더 발벗고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이제 30년이나 해묵은 「사할린」교포의 귀환문제는 내일이면 이미 그 뜻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당국도 가일층의 다변적 외교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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