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법의 객관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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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15일부터 발효함으로써 앞으로 독과점업체의 제품과 용역 등의 가격결정에 있어서 정부의 깊숙한 개입과 폭넓은 최종결정권이 제도적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이 법안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업계에서는 상당한 불안을 감추지 못했던 게 사실이나, 이른바 고문조항에 대해서는 그동안 상당한 수정이 가해져 시행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시행령 안에 나타난 외형거래액 20억원 이상 업체 전부를 독과점업체로 규정하겠다는 방침 등 몇몇 기술적인 문제점이 전혀 없지도 않으나 자유기업주의에 대한 기본적 제약조치로서의 이 법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불가피한 추세인 대규모화 및 기업집중화 경향에 대한 보완조치라는 점에서 언젠가는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이 법의 시행을 계기로 이 땅에서도 자유기업주의의 사회적 측면과 기업적 측면을 함께 훌륭히 조화된 기업풍토가 하루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이 법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정상가격을 유지한다는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여기 대한 정부 및 업계의 깊은 상호이해와 협조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법 운영에 있어 조금이라도 편법위주나 무리를 자행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기본자세가 확립되어야 하겠음을 거듭 강조해둔다.
기업측으로서는 오직 사실에 입각해서 가격을 결정, 이를 정직하고 객관적으로 신고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다른 한편 물가당국으로서도 모든 가격 심의에 있어 신고된 객관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함에 조금이라도 유루가 없도록 배려하는 「페어·플레이」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쌍방이 객관적 기준 이외의 것은 일체 고려치 않는다는 선의의 협조정신을 결할 때, 이 법은 당면한 물가안정에의 기여는 물론, 국민경제의 정상운영에 도리어 지장을 초래할 우려마저 없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물가상승은 본래 투자·소비·통화관리는 물론, 그밖에도 외환수급사정·조세정책 등 제반 경제정책의 총체적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물가억제를 위해서는 물가상승의 제요인을 근원적으로 배제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한편에선 물가상승의 기본적 제요인을 축적시켜둔 채 그 결과로써 나타난 현상을 이 법의 힘만으로 억누르려 하는 것은 분명히 본말이 뒤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이 법은 물가상승의 제요인 중 분명히 독과점적 조작으로 인하여 파생한 폐해만을 다루어야 하는 것이지, 결코 그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수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 법이 단기적인 물가안정 목표달성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확대 운용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이다.
물가는 장기적·추세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국민경제의 정상화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기간만 억제되는 물가란 결코 바람직한 것이 못된다는 것도 자명한 이치에 속한다. 예컨대 연간 물가상승의 상한선으로 10%의 목표를 설정했을 경우에라도 그 뒤의 내외 여건 변동으로 이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엔 그렇게 된 객관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 적시에 가격조정을 단행하는 편이 장기적인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이 법은 자칫 잘못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경고하면서 우리는 당국의 각별한 자제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의 안정이란 정부 못지 않게 전체국민이 바라는 바인 것이므로, 이 법의 시행으로 일부 업체의 부당한 가격조작이나, 폭리의 폐단이 완전히 제거되어 진정한 물가안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여기 덧붙여 국민경제의 보다 건전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정부와 업계가 함께 협조자세를 잃지 않도록 이 법의 선용을 당부코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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