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등단 40대작가들 주제의 한계성 드러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요즘의 문화활동은 지난날에 비해 매우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60년대까지만해도 작가들의 문학활동은 신문·잡지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소설이 영화화된다, 창작집이 쏟아져 나온다 해서 그 폭이 훨씬 넓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본래 문학활동이 출판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은 원칙적인 문제입니다만….
홍=그것은 문학 그 자체의 요구에 의한 현상이라기 보다는 문학외적인 요구에 의한 현장으로 봐야겠지요. 영화도 그렇지만 출판도 무명의 신인이 제외돼 있는 것을 보면 꼭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사회과학적인 입장에서의 분석이 필요하겠지요. 가령 지난날의 독자와 지금의 독자가 다르다는 것도 이야기돼야겠는데요. 서정인씨의 『여인숙』(한국문학) 같은 작품이 새로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당연하다고 봅니다.
홍=동감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창녀의 밑바닥 인생을 드러내어 고발정신을 펴 보이고 있는데 이 작품은 고발정신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짜릿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밖에서본 창녀세계가 아니고 창녀쪽에서 본 창녀세계라고나 할까요.
김=『별들의 고향』의 「경아」나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를 60년대 한국사회의 도시근대화와 그 퇴폐에 대한 향수로 본다면 『여인숙』은 그와 같은 환상에 젖은 창녀형의 「센티멘트」를 극복한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홍=조세희씨의 『「뫼비우스의 띠』(세대)도 주목할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제목이 보여주듯 이 작품은 매우 암시성을 띠고 있는데, 즉 이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안과 밖이 있지만「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한 변칙현상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변칙이 있다고 믿는 지적인 경직성을 경계해야한다는 지성의 자율과 자유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50년대에 등단한 중년작가들이 한꺼번에 작품발표를 한 것도 특이한 현상이었습니다. 천승세씨의 『토산댁』(월간중앙), 오유권씨의 『서울살이』·정구창씨의 『40m도로』·정연희씨의 『대합실』(이상 현대문학), 송병수씨의 『암흑의 벽』(문학사상), 최상규씨의 『독야행』(한국문학) 등이 그것인데요. 40대작가들의 의욕과 건재를 보였다는 점에서 호감이 가지만 이들이 다루는 주제에 어떤 한계성 같은 것이 느껴져서 불만이었습니다. 자기「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미지」가 밝게 떠오르지 않는다든지 문제의식이 제대로 표출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은 아무래도 50년대 작가들이 부닥치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요.
홍=시대나 작가에 따라 다르다고 봐야겠지요. 문제의식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오정희씨의 『적요』(문학사상)는 운신이 어려운 몸으로 「아파트」에 갇혀 사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노인의 소외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시의 야만성 같은 인간사회의 원초적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작가와 문제의식에 관한 문제는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으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뜻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이밖에 홍성원씨의 『삼천행』, 백용운씨의 『편지』(이상 현대문학) 정을병씨의 『죽음』·김문수씨의 『지문』(이상 문학사상) 등을 관심 깊게 읽었습니다. 작가의 눈에 비친 현실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전개되고 있는데 『삼인행』에서는 박진감 있는 지적 모험이 현대적 의미로 부각되고 있으며 『지문』에서는 주민등록갱신에 따른 한 서민가족의 아픔과 슬픔이 절절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