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선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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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핑퐁」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유쾌하다. 「셀룰로이드」로 만든 공이 「테이블」위에서 튕겨지는 소리를 흉내낸 것 같다. 서양사람들의 귀엔 그 소리가 「핑-퐁」으로 들린 모양이다. 하지만 「핑퐁」은 워낙 탁구공을 만드는 회사의 상호였다.
「테이블·테니스」라는 말은 1921년부터 공식으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 영국에서 「테이블·테니스」협회가 발족하면서 「핑퐁」이란 이름은 애칭이 되어 버렸다. 탁구라는 말은 중국에서 「테이블」이란 말을 따서 만든 명칭이다.
이 탁구는 벌써 l880년 무렵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경기다. 처음엔 「코르크」나 고무로 만든 공을 사용했었다. 이때만 해도 「스포츠」의 한 종목이기보다는 사교계의 유희물이었다. 이것이 일반에 보급된 것은 1897년 영국에서 「지프」라는 사람이 「셀룰로이드·볼」을 만들고 나서다. 시설이 단조로와 금방 대중적인 경기가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24년1월에 처음으로 탁구대회가 열렸었다. 일본인이 경영하던 한 신문사가 주최한 경기였다. 그후로는 때때로 이런 대회가 열렸다. 우승은 일본인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했다. 그러나 1927년 전조선탁구대회 때부터는 한국인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여자부에선 장순자라는 여고생이 당당히 일본선수를 압도했다. 그 뒤로는 우리여자선수들이 번번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세계대회가 열린 연대는 1927년. 그 무렵 「런던」에서 첫 선수권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이후 거의 10여년을 두고 세계탁구의 패권은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점해 왔다. 2차대전이후인 1946년부터 1953년까지도 역시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의 세력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빅토르·바르나」·「라즐로·벨라크」 등은 한때 세계탁구의 제왕으로 불릴 정도로 신화를 남긴 선수들이다.
여자선수들도 역시 남자와 마찬가지로 「체코슬로바키아」출신이 세계를 석권했었다. 「헝가리」 「루마니아」 등 중부「유럽」의 여자선수 16명이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탁구계의 여왕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1954년을 고비로 그 패권은 「아시아」로 넘겨지고 말았다. 일본과 중공의 선수들이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의 「챔피언」도 역시 이들 중공과 일본에서 서로 다투게 되었다.
하지만 6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의 여자선수들이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이에리사와 정현숙 선수는 이들의 강적이 된 것이다. 최근 서독에서 열렸던 세계대회에서도 이들은 개인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여성의 『억척』기질은 알아주고도 남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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