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키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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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라가 없는 서러움은 나라를 잃어봐야 안다. 나라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나라를 잃기가 얼마나 쉬운가를 알게 된 다음에야 깨닫게 된다.
일본이 강화조약을 몰고 올 때까지,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나라안 정보를 일본 쪽에 팔았다. 이런 무리들은 그 후에도 많았다. 대한매일신보의 광무11년 3월6일자엔 이런 기사가 실려있다. 『현임대관에 자서제질을 선택하야 일본에 파송하야 각 관청을 시찰한다니 하사를 시찰하난지 조왕숙래가 도손국고하니 근래 엽관자류난 일쇄동풍에 호관이 재전이라지…』
을이의 국치가 있기 3년 전의 일이다. 이때 일본유람에서 돌아온 자제들이 일본인들을 본뜨며 활개치는 풍조를 한탄하는 기사도 있었다.
33인의 한사람이던 최린의 자숙전을 보면 합병이 되던 날 종로네거리의 상가는 다른 날과 별 다름 없이 문을 열고 있었다 한다. 겉으로나 속으로나 나라를 잃었다는 서러움은 아무 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라의 그 마음을 모르는 백성이라서였을까. 아닐 것이다. 나라를 잃은 백성의 서러움을 아직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지 9년이 지났다. 같은 땅, 같은 민족이다. 나라가 송두리째 빼앗기는 줄도 모르고 살아오던 사람들이 나라를 찾겠다고 어디서 그토록 힘찬 절규를 방방곡곡에 메아리치게 할 수 있었을까.
앞장 나선 사람들이 훌륭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 후 그분들 중에는 뒤끝이 깨끗하지 못한 분들도 적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때 그날을 돌이켜 볼 때 앞장 나설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장한 일이었다.
9년 동안에 나라를 잃은 서러움을 톡톡히 당한 터였다. 그만큼 숨죽여 가며 살아가야 할 만큼 무서운 때였다. 그런 때 감히 들고 일어 나섰던 사람들을 손가락질 할만큼 떳떳한 사람이 지금 몇이나 되겠는가.
다행히 지금 우리에게는 나라가 있다. 그러나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데는 한 두 명의 지도자들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름 없는 국민 모두가 각분야에서 나라에 대한 다시없는 자랑을 안고, 본분을 지켜 나갈 때 비로소 나라는 지켜지는 것이다.
57돌 3·1절을 맞는 아침. 서독「하노바」에서 열린 제27회 「오픈」 국제탁구선수권대회장으로부터는 한국의 이「에리사」와 정현숙 선수가 중공선수들을 누르고 1, 2위를 차지했다는 쾌보가 날아왔다.
이렇게 국위를 해외로 선양하는 것도 나라를 지키는 좋은 길이 된다.
그러나 누구나 이「에리사」처럼 될 수는 없다. 또 그것만이 나라를 지키는 길은 아니다.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할 일을 성실하게 다해나갈 때, 누구나가 나무랄 데 없는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애국의 길이란 어쩌면 이렇게 쉽기도 하고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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