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 있는 문화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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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정부는 주체성 있고 자주적인 민족문화예술의 기틀을 바로 잡는데 중점을 둔 홍보문화시책을 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5일 박 대통령의 문공부순시에서 밝혀진 정부의 홍보문화시책은 전 공무원을 홍보요원화하여 국내외 홍보체계를 재정비하겠다는 것과 아울러 전통문화의 계발, 민족예술의 진흥, 대중연예의 과감한 정화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다.
문공부의 이 같은 문화예술시책은 대체로 예년의 시책방향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올해는 이미 집행 중에 있는 문예중흥 5개년 계획의 제3차 연도이기 때문에 신임 김 문공이 제시한 방안은 그러한 계획을 더 한층 알차게 실시하기 위한 세부지침으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1976년이 개항 1백년을 맞는 민족사상의 한 계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민족문화예술을 새삼 주체적으로 또 자주적으로 파악하고 창달·진흥하려는 정부의 시정목표에는 좀더 세계사적인 안목이 부각된 전향적인 「비전」이 함께 제시되었더라면 싶다.
이런 점에서도 올해 문공부가 주체적 민족사관의 정립 작업을 강화하여 국학자료발간과 고전국역의 폭을 넓히고, 8개년 계획으로 민족박물관 건립에 착수하겠다는 것과 우리역사상의 위인·선열의 유적들을 보수하고, 그 주변환경을 정화하는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기대할 만한 일이다.
전통문화를 발전시켜 국가발전의 정신적 지주로 삼으려는 시정목표는 세계사의 진운과의 의미연관하에서 그 새로운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려는 원대하고 의욕적인 계획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럴 수록 민족전통문화의 진흥이라는 목표실정과 그 시행에 관련해 행정당국은 폭넓은 이해와 선의의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민족문화」혹은 「전통문화」는 분명히 아름다운 말이며,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할 성질의 것이지만, 동시에 자칫 오해와 오용의 우려도 전혀 없지 않다. 혹시 「민족전통문화의 진흥」이 곧 「외래문화의 배격」과 직결될 때, 이는 낡은 「쇼비니즘」에 빠질 우려 또한 없지 않은 것이다.
해방 이 후 급격하게 밀려든 외래 문화의 충격이 너무나 심각했고 자기 동일성을 지키려는 민족전통문화의 반발과 저항도 아울러 처절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 반발과 저항의 한 양상으로서 혹시 외래문화 전체를 편협하고 융통성 없는 기준으로 배척할까 일말의 불안도 없지 않다.
엄격히 말해 우리의 전통문화라는 것도 역사적으로는 외래문화와의 상호교류 속에서 형성되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싯점에서도 전통문화를 세계문화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며, 거기엔 반드시 세계적인 안목과 세계문화사조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전통문화란 민족적인 「아이덴티티」를 확보하는 근거로서 존립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문화에 있어서의 정치적 국경을 획정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때문에 민족문화의 특수성이 강조되는 경우에라도 그것은 세계문화의 보편성을 떠나지 못한다는 인식이 전제돼야겠다.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있어 민족전통문화를 사랑하고 키우는 일은 물론 당위에 속하는 일의 하나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이 인간의 자유로운 표현활동의 소산이란 것을 확신하는 태도가 또한 필수적인 것이다. 위대한 문화예술과 문화일반의 발전은 규제를 강화하느니 보다 지원을 강화하는 곳에서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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