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방선거, 공짜 좋아하다 집안 거덜 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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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방선거전이 뜨거워지면서 예비 후보들이 이런저런 선심성 공약 보따리를 풀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약속을 경쟁적으로 떠벌리는 모양새다. 경솔한 공약엔 무리한 재정 투입이 뒤따른다. 재정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결국 우리들이 내는 세금이기에 달콤한 공약이 세금 도둑이 되지 않게 유권자가 눈을 부릅떠야 한다.

 요즘 관심 끄는 공약들 앞에는 대체로 ‘무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실제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공짜’라는 말만큼 유혹적인 언어는 없을 것이다. 전남의 시장 선거엔 ‘100원짜리 콜택시’, 전주시장 선거엔 ‘무료 콜버스’ 공약이 나왔고, 광주교육감 선거엔 초·중·고교생에게 대중교통비를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공약까지 등장했다. 대전순환고속도로 통행료를 전면 무료화하겠다는 통 큰 약속, 지역 상가에 공짜 급전 대출을 해주겠다는 구호도 난무한다. 대구에서 제시된 초등학생 무상급식은 그렇다 쳐도 구미시에선 초·중학교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는 주장이 나왔고, 대전·제주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예비 후보자들은 무상교복·무상교재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공짜 공약 신드롬은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이 ‘무상급식’ 프레임으로 재미를 좀 본 뒤 새누리당이 뒤따라 가면서 일종의 한국 정치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늘어나는 초등학교 무상급식 예산 때문에 교원 충원 예산이 쪼그라들어 서울의 경우 임용고시 합격자 990명 중 교사 발령자가 38명(3.5%)밖에 안 되는 초유의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이처럼 공짜 공약은 시간이 지나 다른 곳에서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치명적 유혹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지방선거에서 전국적 관심을 모았던 용인 경전철 공약은 결국 지방채를 4400억원 발행해 고스란히 주민 부담으로 전가됐으며 아직도 운행하지 않는 인천 월미도 은하레일엔 850억원이 들어갔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어느덧 지방 부채 100조원 시대가 도래했고 지방자치 파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공짜·선심 공약이 판치게 된 것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승리가 선’ ‘이기고 보자’는 과도한 승리주의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만 해도 지킬 수 있는 정책만 내걸자는 ‘매니페스토 공약 운동’이 정치권과 언론, 중앙선관위 등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후보들은 공약마다 우선순위·재원·절차·방법을 가능한 한 수치의 형태로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오늘날처럼 포퓰리즘 공약이 심하게 확산되진 않았다. 선거문화가 8년 전보다 오히려 후퇴한 건 아닐까. 공짜 좋아하다 집안 거덜날 수 있다. 이런 일이 배태되는 공간이 선거 기간이다. 선거 초반인 지금이라도 중앙선관위와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 언론, 시민단체들이 매니페스토 운동을 재점화하는 일에 나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