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 인도인 부부와의 대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2년만에 만난 옛친구>
12년 전 인도에 왔을 때 사귄 여러 친구 가운데서 유독 우리나라에 관심이 컸던 사람을 우선 찾았다. 그는 『이게 웬일이요!』하고 깜짝 놀랐다가 힘있게 끌어안으며 『글쎄, 예고도 없이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온단 말요…』하면서 무척 반긴다. 그도 어느 새 장년이 되어서 구레나루를 길렀는데 수염이 많은 인도인 특유의 멋과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부인도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타산 없이 사귄 정신적인 결합이 이같이 큰 것은 서로 이국인이라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이웃사랑이 크지 않고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침 점심때여서 부인은 이 나라의 주식인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대접을 해주는데 우리나라의 것과는 달리 여간 맵지 않아서 연방 눈물이 났다. 이 주부는 조금도 맵지 않다는 듯이 잘도 먹는데 나만이 눈물을 흘리며 먹는 것이 우스웠던지 날더러 엉엉 우는 어린아이 같다고 하면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이 집주인은 중산계급인 「인텔리」로서 처음 사귀었을 때도 이 나라에 관한 많은 지식을 가르쳐 준 고마운 분이다.
인도사람은 영국의 통치 밑에서 독립한 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생활면에 있어서도 「힌두」의 정신으로 개혁을 단행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영국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영국인들처럼 식사 뒤엔 으례 홍차를 마시는데 부인이 손수 끓인 홍차 맛이 어찌나 좋은지 문득 『다와 동정』이란 영화의 여주인공인 배우 「데보라·카」가 생각났다.

<「힌두」교 속에 고통 잊고>
이 나라 사람의 일상생활이 화제에 올라 경제에 대하여 물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1951년부터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지금까지 줄곧 여러 번 되풀이하여 공업화에 온 힘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높아졌다는 것은 허울좋은 이름이며 생산량이 인구증가를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권층만이 잘 살고 서민들은 여전히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네루」수상 때부터 부르짖은 비동맹외교와 중립주의를 내세우기 때문에 동서 두 진영의 대립 속에서 교묘하게도 원조를 서로 경쟁적으로 하게 했으나 여러 산업시설의 생산성이 약하고 보니 수출총액보다도 수입총액이 훨씬 커져서 벌써부터 인도의 국제수지는 결손을 보아왔다.
더구나 외화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뇌들이 여러 나라를 분주히 쏘다니며 원조를 요청해 보았지만 5개년 계획도 원조를 해주는 나라의 요구를 따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도리어 이런 외국원조가 인도의 독자적인 발전을 방해하기까지 되었다.
그가 『인도국민은 지금 체념하고있다』는 말에서 나는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정치적인 타성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미덕으로 「힌두」정신을 가지고 세속적인 괴로움을 초극하고 있다는 것인지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12년 전 꽤 오랫동안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내 딴은 이 나라의 모습을 관찰한다고 했지만 좀 체로 이 나라 사회의 본질을 붙들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좀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려고 그 전에 가보지 못했던 지방을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있는 참이었다.

<굶어죽어도 원망 안 해>
그의 부인도 우아한 목소리로 종종 자기 남편의 말에 간주곡처럼 끼어 들었다. 인도인들의 체념은 우리나라 국민과는 다를 것 같아서 그 뜻을 그에게 물었더니 옆에 있는 부인이 가로채며 『어쩌면 우리 인도인의 정신 가운데서 가장 특징으로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체념이라는 것인지도 모르죠. 지나간 이야기입니다만 세계 제2차 대전 때 「뱅골」지방에서 3백50만이라는 수많은 우리동포가 굶어죽었는데 숙명으로 알고 가진 자를 해치거나 남을 원망하지도 않고 고이 죽어갔답니다.
이런 정신이 고스란히 고대에서 내려오는 무저항주의적인 성격을 띤 체념이라고 봐요. 1947년 「파키스탄」 과 분리독립을 하게 되었을 때 우리 인도와 서로 미워하여 같은 민족인데도 종교적인 분열로 수없이 죽었지만 이런 살육은 결코 우리 인도인의 본성은 아니며 「힌두」교를 믿는 우리는 여전히 종교적인 드높은 박애주의와 체념을 지닌다고 믿고싶어요.
이 부인도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어서 훌륭한 내용의 이야기를·해주었으나 인도인의 체념의 사상을 깡그리 예찬하는 것이 패배의식이며 비현실적인 것 같아서 아쉬웠다. 모두 저 유명한 독일의 예술시인 「게오르게」의 시에서 인간정신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앙이라고 노래한 것은 「힌두」교를 두고 한말은 아닐까 생각됐다.
인도인은 현대교육을 받아도 그 저류에는 체념과 초월정신의 권화라 할 강렬한 「힌두」정신이 흐르는 것 같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