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주은래|37년 중국 한구서 첫 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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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가 주은래를 만난 것은 1937년 중국 항구에서였다.
나는 대령으로 사수 참모장을 했고 주는 공화당 중앙위원으로 이곳에 와서 공산당 연락책임을 맡았는데 나는 그와 항일전쟁에 관해 의논했다.
어떻게든지 일본을 이겨서 중국과 한국이 독립을 해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으며 따라서 나와 주는 동지적 입장이었다. 그는 한반도의 독립에 누구보다 적극성을 보였다.
주는 한국사람에 대해서도 퍽 호의적이어서 40년께 광복군 제1지가가 중경에서 열하로 이동하면서 공산당 점령지역을 통과할 때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다.
주는 특히 우리 독립운동가중 좌파인 김두봉 등과 교제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안사변 때 고 장개석 총통을 살린 것은 전적으로 주은래의 공로였다.
사변을 주도한 장학량 양호성 등은 장개석 장군을 없애버리려고 했으나 주가 이들을 설득해서 장 장군을 살렸고 이 결과로 국공합작에 성공, 항일전쟁이 이루어 졌다.
주는 모택동이 강서성에서 중소 「소비에트」를 만들 때 가담해서 3만리 장정 때 동행했는데 준 의회의에서 모에게 전권을 맡기는데 기여하여 모의 오른팔이 되었다.
외교에 능한 편으로 주는 내가 만났을 때도 중재 역을 많이 맡았다.
성격은 온화하고 부드러워 공산당 하는 사람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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