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저축이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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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린이들의 저축심을 길러 준다는 명분을 내건 어른들이 1년 동안 2백40여만원을 「저축」한 어린이를 가장 모범적인 저축 어린이로 뽑아 표창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그것도 다른 사람 아닌 어린이의 교육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그랬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조그만 「사건」에서 매우 걱정스러운 사회 풍조의 일단을 보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큰 병폐 중의 하나로 생각되어 온 배금주의가 이처럼 교육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양식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어린이 저축의 본뜻은 어릴 적부터 돈이나 물자를 소중히 여기고 절약하며 푼돈이라도 애틋하게 저축하는 정신을 심어 주는 데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로 하여금 저축의 관행을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근면하고 착실하게 적은 액수라도 꾸준히 절약하는 태도를 길러 주고 장려하는 것이 정도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어린이 저축의 본뜻이 그러하다면 당연히 장려하는 방법도 그에 맞추어 저축하는 정신과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 액수의 다과는 별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대구시 교육청이 실속 위주로 고액의 저축 어린이만 표창하겠다는 처사는 매우 온당치 못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물론 2백40여만원이라는 거금을 저축한 어린이의 노력이 가상치 않다는 뜻이 아니라 비록 액수는 적으나 그보다 훨씬 더 가상한 저축을 이룩한 어린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 교육청의 이번 처사는 결국 안이한 실속 주의와 물질주의의 한 표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이한 생각이 반드시 해당 교육청 관계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 있다.
지금까지 어린이 저축 표창에 관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에 젖어 있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표창 제도 운영은 진작 달라져야 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실적·고액 위주의 어린이 저축 표창은 저축을 장려하기는커녕 오히려 근면하고 성실한 많은 어린이들을 실망시킬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애틋한 푼돈의 저축을 무의미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어린이 저축을 통해서 내자 동원을 이룩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그러한 표창 태도는 하루속히 달라져야 한다,
지금의 제도는 저금 총액이나 매월 증가율 등을 주로 참작하고 있어 평가 기준 자체가 고액 위주로 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이런 기준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기준은 어린이의 저축 환경이나 저축 과정 또는 저축과 관련한 교육적 의미를 더욱 중점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원래의 참뜻과 부합하는 길이 될 것이다.
분수에 넘치는 지나친 경쟁이나 저축 능력이 모자라는 어린이들의 열등감을 초래하는 사태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잘못이다, 모든 관계자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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