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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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밤 중「라디오」의「다이얼」을 돌리면 문득『여기가 서울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방송은 흔한 경우이고 억양 높은 북괴·중국방송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때로는「러시아」어도 들린다. 서울은 그야말로 이역풍정이 교차되는 세계의 한가운데 같은 느낌이다.
중공대륙과 그 너머「시베리아」벌판에서 떠드는 소리가 이처럼 귀따갑게 들리는 것은 새삼 전파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유럽」엘 가면 아예 국경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나라 방송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다행히도 그 쪽은 음악「프로」가 많아서「다이얼」을 돌리고 있으면 LP사전이라도 뒤적이고 있는 기분이다.
요즘「제네바」에서는 말하자면 전파의 교통정리를 위한 회의가 무려 7주간에 걸쳐 열렸었다. 장·중파「라디오」용 주파수 재편성에 관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지역관장회의. 남북미주를 제외한 제1지역(「유럽」과「아프리카」, 제3지역「아시아」와 대양주)에서 약 1백여 개국이 참가,『「제네바」계획』에 의견들을 모았다.
이 회의는 많은 발전도상국과 신생국가들이 새 방송국들을 개설, 그 주파수를 조정하지 않으면 안될 필요에서 소집되었다. 중파「라디오」는 적은 비용으로 교육이나 오락 또는 주민통치의 수단으로 보급하기가 쉽다. 따라서 모든 나라는「라디오」방송국의 설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제네바」회의에서는 약 1백여 개의 나라들이 1만국도 넘게 방송국을 개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주파수가 한정되어 있는 데에 있다. 물리적으로 중파주파수는 1백20파밖엔 없다.
이번「제네바」회의에서 중공은 약 6백50국의 신설을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면 중공대륙을 모두 1천7백 수십 국의 중파방송국을 갖게 된다. 우리 나라도 이 회의에서 약 40국의 신설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반도와 일본이 속해 있는 북「아시아」지역의 경우만 봐도 1천5백kw의 초대 출력 국을 포함해 모두 99파 99국의 요구서가 제출되어 있다.
게다가 북괴의 동정이 주목된다. 그들은「제네바」회의에도 나오지 않았다. 필경 속셈이 따로 있는 것 같다. 그것은「전파의 무법자」행세를 하는 것이다. 요즘 이른바 전파방해를 통해 우리의 방송들을 혼신으로 교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경우다.
그들은 국제적인 협약이나 조정에 따른 출력과 주파수로 조정하지 않는다. 마치 황야의 무뢰한처럼 임의로 아무 데나 대고 떠들어댄다. 전파야말로 평화의 복음으로 이용하기엔 가장 알맞은 과학의 혜택이다. 그것마저 무기화 하는 공산집단의 소행은 한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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