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밥버러지’라는 말 자초하는 국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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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간사인 조해진 의원이 21일 기자회견에서 “(국회가) 밥버러지 같은 취급을 자초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추진해온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방호법) 개정안 처리가 야당의 반대로 무산되자 원색적인 어조로 성토한 것이다.

 이 법안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이었던 한국이 국제협약인 핵물질방호협약의 발효를 위한 국내법 개정을 2014년까지 마치겠다고 각국 정상들 앞에서 다짐한 약속을 이행하는 후속 조치다. 그해 8월 국회에 제출된 이 법안은 여야 모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19개월째 상임위 서랍에서 잠을 자 왔다.

 정부는 손 놓고 있다가 박 대통령의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이 임박하자 뒤늦게 움직였다. 정홍원 총리가 국회의장을 찾아가 협조를 부탁하고, 22일엔 “핵안전 문제는 정파적으로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회의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효과 없는 늑장 대응이었다.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 등 다른 112개 법안과 연계처리를 고집하며 방호법 단독 처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국가 위신은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원자력 시설에 대한 테러를 막기 위한 핵물질방호협약이 올해 안에 모든 참가국에서 발효될 수 있도록 각국에 이행을 촉구할 예정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이 관련법 개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호소력이 있겠는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우선 정부·여당의 책임이 크다. 정치적으로 크게 생색 나지 않는 법안은 늘 뒤로 미뤄놓는 나쁜 버릇이 국제무대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판이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 입에서 ‘밥버러지’라는 말이 나오겠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엄중한 책임의식을 갖고 국민에게 사과라도 해야 한다.

 수권정당으로서 국정의 동반자인 야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방송법안을 처리해주겠다던 여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방호법안을 처리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방송법안과 방호법안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나. 전형적인 ‘끼워 팔기’ 아닌가. 진정 새 정치를 하겠다면 그 같은 구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방호법안을 들여다보면 특별히 민감한 내용도 없다. 핵 범죄 구성요건과 위법행위에 따른 처벌 사항을 규정한 정도다. 방송법안과 달리 여야 간 이견이 있을 소지가 없다.

 24일(한국시간) 박 대통령이 정상회의장에 입장하기 전까지 방호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한국은 회의에 참석한 52개국 정상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하게 된다. 아직 하루의 시간이 남아 있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국익을 생각해 방호법 처리에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