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삶의 전부-탄생 1백주년 맞는 시인 「릴케」회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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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는 12월4일은 독일의 시인 「라이너·마리아·릴케」(1875∼1926)의 탄생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 부치는 「소니트」』 『「말테」의 수기』 등 불후의 작품을 남긴 이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독일에서는 「릴케」전시회·대강연 등 연초부터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편 14일 연세대에서는 기념강연 『시인 「라이너·마리아·릴케」』(김병옥 교수·연세대 독문과)를 통해 그의 문학을 돌아보는 행사가 열렸다.
「릴케」는 우리 나라 청소년들에게도 읽혀지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의 참모습은 제대로 알려져 있는 것 같지 않다. 「릴케」는 독일 또는 세계 문학사에서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모두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딘 위대한 기여자였다. 내용적으로 「릴케」는 작품을 통해 실존주의를 예언함으로써 현대문학의 본격적인 문을 연다. 실존주의의 대가 「하이데거」도 『문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Wozu der Dicht)라는 논문을 통해 「릴케」의 작품에 나타난 실존주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형식면에서 「릴케」는 표현주의의 창시자로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한다. 그의 산문『「말테」의 수기』는 과거소설의 전통을 완전히 깨뜨린 현대소설의 기념비적 존재. 「릴케」에게는 「우주」(Weltraum)라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찬란하고 위대한 「생」은 눈에 보이는 현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영의 세계까지도 이어지며 그 넓은 의미의 삶은 「천사의 세계」를 향해 발돋움한다. 『「두이노」의 비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천사는 「릴케」에게 있어서 예술의 최고권위자를 의미한다. 이상에 도달한 조화를 뜻하는 것이다.
「릴케」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죽음까지를 포함한 생을 긍정·찬양한다. 낭만주의에서처럼 삶을 피해 죽음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다.
「릴케」는 또한 누구보다도 시를 삶의 전체로 받아들인 시인이다. 그에게서 시 즉 문학은 삶의 방편이나 방법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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