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던 혼란…호주 정국|노동당 휘틀럼 수상 전격해임…그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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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호주에선 헌정사상 유례없는 정치적 회오리바람이 일고있다. 지난 26일간 계속된 호주 정국의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존·커」영연방 호주총독이 「고프·휘틀럼」수상을 해임하고 제1야당인 자유당 당수 「맬컴·프레이저」에게 과도내각 구성을 위촉함으로써 정치적 돌풍이 비롯되었다.
뒤따라 상원이 문제된 75∼76년도 정부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이어 하원의 신임 「프레이저」수상에 대한 불신임결의와 의회해산·총선결정 등이 시간을 격해 뒤따랐다.
이러한 사태의 저변에는 사회개혁을 추진해온 노동당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보수세력 간의 대결이 이념적 「이슈」로 깔려있다.
즉 사회복지정책과 대 공산권 적극외교정책을 대담하게 시행해온 「휘틀럼」수상의 구상은 야당으로부터 「사회주의적」색채가 지나치다고 공격을 받아왔다.
「휘틀럼」수상의 노동당 정권은 최근 차관도입을 둘러싼 「스캔들」과 그로 인한 자체 내분 및 30년대 대공황 이래 최대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경제정책의 부진으로 국민의 인기를 잃고있었다.
정권교체의 적기로 판단한 야당이 조기총선을 요구하자 「휘틀럼」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프레이저」자유당수는 노동당이 우세한 하원에서 통과된 정부예산안을 야당이 우세한 상원에서 10월 16일 거부시켜버렸다.
이로 인해 호주 정국은 미증유의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총독의 수상교체 조처로 경색된 호주 정국이 쉽게 풀릴 전망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정치적 공백상태만을 더 지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정부예산안이 부결된 후 실시된 여론조사는 오히려 「휘틀럼」의 인기가 상승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으로 안정을 원하는 호주인들이 예산안을 부결, 사회혼란을 몰고 온 야당에 반대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것은 또 수상경질의 발표 직후「캔버라」시민들의 반응이 친 노동당 쪽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게다가「커」총독의 조처가 법적 타당성을 갖고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즉각 헌법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 모든 결정을 내각의 건의에 따라서 처리하던 총독이 수상과의 의견대립으로 독자적인 결정을 한데서 복잡성을 더하게 되었다. 호주헌법에 따르면 총독은 궁극적인 헌법의 집행자이다. 따라서 예산통과가 좌절되는 것과 같은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총독이 수상의 사임과 총선실시를 권고했으나 수상이 이를 거절했기 때문에 헌법집행권을 발동, 수상을 해임했지만 문제는 그와 같은 전례가 없다는데 있다.
의회를 해산,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는 「프레이저」자유당 당수의 전략이 일단 성공하긴 했지만 다가오는 12월 13일의 총선거에서 자유·지방 양당연합이 국민들의 신임을 얻을지는 현재로는 의심스러운 형편이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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