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외교는 적극공법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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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련교포 성묘주선은 쾌사>
해방 후 30년간 우리는 반공을 해왔다. 반공의 방향은 방공 혹은 타공에 역점을 둔 것이었다.
73년의 「7·4」 공동성명이 있기까지는 공산주의자와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화된 「터부」였다.
국내에서 뿐 아니라 재일동포들이 조총련과 상대하는 것까지 금했다.
남북간의 대화를 주목적으로 한 「7·4」성명은 이 같은 금기를 깼다는데서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며 통일을 갈구하는 국민에게 큰 희망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공산주의자들은 남북대화가 그들의 위장평화공세의 수단이라는 마각이 밝혀지면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중단했다.
이 상태에서 정부가 지난 추석절을 계기로 조총련동포들의 모국 성묘단을 주선한 것이야말로 시의적절한 쾌사라 하겠다.
북한공산주의자들과의 대결은 우리에게 숙명적인 것이다. 피할 수도, 후퇴할 수도 없다. 이 같은 대결에서 패배주의는 가장 경계해야 한다.
조총련동포들을 불러들인 것은 「자신」을 갖는 행위였다고 여겨진다.

<대동구권교류 서두를 때>
방공도 아니고 타공은 더욱 아니다. 적극적인 반공이고 승공의 효과적 방법이었다.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해 우리는 흩어진 가족들의 재회·성묘단 교환·면회소 설치 등의 교류문제를 논의했다.
이번 조총련동포들의 성묘단이야말로 적십자회담의 한 의제가 실현된 것과 다를 바 없다. 북한에 대해 주강하던 것을 우리 스스로 수범을 보인 것이다.
그 성과는 아마 정부당국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클 것으로 생각한다.
「백문불여일견」의 이치가 그대로 실현된 것은 조총련동포들의 소감피력에서 역력히 드러났다.
나는 이것을 계기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을 설득하고 끌어들이는 정책을 써야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해의 「6·23」선언으로 우리는 적대하지 않은 공산국가들과도 교류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책방향은 명백하지만 아직 구체적 성과가 없는 듯 하다.

<「탈유엔」은 성급하지 않을까>
동구권과의 관계개선은 어떻게 됐는가. 국제회의 혹은 민간인 회합 등으로 그동안 동구 뿐아니라 소련에도 여러 차례 국민들의 입국이 있었으나, 정부 「레벨」의 교류는 아직 실현이 안되고 있다.
동구권과의 교류 못지 않게 소련이나 중공에 우리의 평화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안보면에서 중요한 일이다.
소련과 「파리」근교에서 비밀접촉이 있었다는 외신보도가 국회에서 제기됐지만 정부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나는 그 같은 비밀접촉이 있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중공에도 자신을 가지고 접촉방안을 쓸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유엔」정치위에서 남북한결의안이 모두 통과된 것을 계기로 탈「유엔」론이 나오고 있으나 나는 성급한 이론이 아닌가 생각한다.
변질된 「유엔」이 한반도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입증됐다. 그러나 북괴가 우리를 고립시키려고 사력을 다하려는 마당에 어떻게 탈「유엔」을 하겠는가.
「유엔」이 너무 비대해져 자체의 조절기능을 상실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른바 제3세력의 「횡포」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유엔」을 등질 수는 없다.

<부조리 제거가 반공지름길>
조총련을 끌어들이는 「적극공법」이 「유엔」에도 적용되어야한다. 제3세력의 결속을 약화시키면서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의 상임이사국과 보다 긴밀히 접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3세력이 「유엔」의 다수표를 좌우한다는데서 소홀히 할 수 없고 강대국에 대해서는 그들의 결정적 영향력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의식과 생활태도도 「적극적」 반공에 직결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윤리의 타락·생활의 사치성·부조리가 걷히지 않는 풍토에서는 반공정신이 제대로 구현될 수 없다.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는데서는 국민개개인의 의지와 근검한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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