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떠나는 젊은이 보면 가슴 저미는 비감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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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얼마 전 30대 후반의 한 옛 제자부부가 미국이주를 떠난다고 집으로 인사를 왔다.
그런데 K군 부부의 표정은 흔히 외국을 간다고 나서는 젊은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으시댐이나 고무풍선같이 부풀어있는 어떤 「허황함」보다는 착잡한 우수 같은 것이 깔려있는 듯했다.
원래 나는 고국을 떠나는 해외이민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K군의 얘기를 듣고 별로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꾸중기가 섞인 이민한담을 늘어놓았다.
잠자코 내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K군 부부는 『그런데 최근 제가 10여년 동안을 나가던 회사가 본사를 부산으로 옮겨 내려가 있는 사이에 모시고 있는 부모님들과 집사람 사이가 몹시 나빠졌고 근무하는 직장에 대한 진취성도 없어 미국에 가 박사과정이나 해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학위를 받는 대로 『가능한 한 귀국해 한국에서 살겠다』는 대목을 힘주어 말했다.
며칠 후 또 다른 30대 초반의 제자 C군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고 인사를 왔다. C군은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적인 현실들을 흥분된 어조로 비판하면서 고국을 떠나는데 대해 한치의 미련도 없다는 태도였다.
아마 C군의 태도로 보아 비행기「트랩」을 올라서면서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중얼거리기라도 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나는 이민을 떠난다는 이들 두 제자에게서 각각 다른 유형이긴 하지만 오늘의 젊은이 상을 들여다보고 가슴이 저려오는 비감을 느끼며 나름대로의 몇 가지 생각을 해봤다.
우선 고국을 버리지 않겠다는 K군의 의지와 흔쾌히 절연을 선언하는 C군의 태도는 전혀 다른 두 이민유형이라는 점이다.
원래 이민은 협소한 국토와 제한된 자원이 팽창하는 인구과잉을 수용하지 못할 때 다른 지역의 황무지를 찾아 신천지를 개척해 살려는데 그 목적을 두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해외이민은 학부를 졸업한 우수한 젊은이들과 사외지도층 인사, 부당한 상행위를 위한 기업가들이 주류를 이룬다.
더욱 서글픈 일은 조국에서 자포자기한 심정을 갖고 보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선진문명국을 찾아 떠나는 「젊은 두뇌」들의 이민행각이다.
속담에도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나가서도 샌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조국에서 성공치 못하고 패배한 자가 어찌 외국에 가서는 대성공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또 한가지 서글픈 일은 K군의 이민사연에 나타나 있는 우리 고유의 가족제도의 파괴문제다.
우리 나라도 근래 가족제도가 핵가족화 하면서 K군의 경우와 같이 시부모와 며느리의 별거, 자녀를 외면한 부부중심의 가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전통적인 우리 가족제도에 고쳐져야 할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서구문명에 대한 장점의 하나가 되는 훌륭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거추장스런 가족관계나 못마땅한 조국현실을 도피해 이역 땅으로 이민을 가기보다는 그 장점을 살리고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앞서야하겠다. <고형곤(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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