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고립된 그들에게 손 내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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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서준
사회부문 기자

알코올중독자였던 남편은 일찍 생을 마감했다. 박모(58·여)씨는 혼자 보험설계사를 하며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하지만 실적이 없어 월 10만원을 못 버는 경우도 많았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다. 지난 2005년 보험설계사 일을 그만두면서 벼랑 끝에 몰렸다. 월급 100만원을 받으며 김밥집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카드대출을 받아 카드빚을 갚는 카드 돌려막기가 계속됐다.

 어느 날 박씨의 하소연을 듣던 단골손님이 “신용회복위원회 가보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라고 조언했다. 이 말 한마디에 박씨는 5년간 그와 가족을 억눌러왔던 ‘빚의 굴레’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박씨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을 통해 이자를 탕감받고 원금을 60개월에 걸쳐 분할 상환할 수 있게 됐다. 박씨는 “5년간 추심 직원의 협박과 폭언에 시달렸다”며 “그 손님이 너무 고마워 아직도 감사인사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빚을 거의 갚았고, 돈을 모아 언젠가 김밥가게를 낼 희망을 품고 있다.

 최모(19)군은 6년 전만 해도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문제아였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마저 7살 때 돌아가셨다. 중학교를 입학 3개월 만에 그만두고 거리를 방황했다. 그때 한 친구가 ‘청소년상담복지지원센터’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이곳 강사들의 도움으로 최군은 한식·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중졸·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데 이어 올해 전문대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했다. 최군은 “초등학교 때 이미 내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지원센터의 도움이 없었다면 평생 도전과 성취의 짜릿함을 모르고 살 뻔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벼랑 끝 탈출은 주변의 도움과 정부의 지원책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서울 영등포 일대 고시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벼랑 끝 사람들은 주변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고시촌을 배회하던 강모(41)씨는 “가족과 인연을 끊은 지 오래됐고 만나는 사람도 없다. 일이 없는 날엔 고시원 방에서 TV를 보며 술을 마신다”고 했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의 절망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방치할 경우 사회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운이 좋은 사람만 벼랑 끝에서 탈출할 수 있어선 안 된다. 사회 전체가 이들의 자활 의지를 일깨워줘야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한다.

 한번 실패로 벼랑 끝으로 떨어지면 다시 올라갈 기회도 없는 사회는 잔인하다. 이젠 벼랑 끝에 선 소외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회, 벼랑 아래에 촘촘한 안전망과 다시 벼랑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갖춘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

이서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