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물가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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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경제는 원유가격 10%인상으로 새로운 조정과정을 거쳐야 하게 되었으며 우리의 경우에도 조만간 그 여파가 밀어닥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원유가격 인상이 미치는 파급효과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분명한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크게 보아 두 가지 측면이 예리하게 대립된 채 분분한 논의가 있을 것만은 확실하다.
즉 연말까지의 물가요인들을 고려할 때 물가억제선 20%는 일단 지키고, 내년 초에 가격체계를 조정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주장이 그 하나다. 이에 대해 다른 하나는 어차피 금년의 물가억제 목표선을 지키기 곤란해진 이상 연내에 물가체계를 재조정하는 것이 앞으로 안정정책을 집행하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대립적인 견해인 것이다.
어느 쪽의 견해도 그럴만한 현실적인 이유가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행정적 사리만을 생각하는데 치우쳐 원칙을 저버릴 수는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물가정책은 깊은 연구와 신중한 절충이 동시에 수반되어야할 것이다.
우선 그 동안 축적된 물가요인과 이번에 인상된 원유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합산한 실세물가 요인은 얼마나 되는가를 명확히 구명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밝히지 않고 물가정책을 다룬다면 맹목적인 물가정책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에도 너무나 행정적인 편의성에 치우치는 경향이 짙어 물가정책이 정곡을 찌르지 못한 경우가 많았음을 유의해야 한다.
다음으로 잠재된 물가요인을 모두 고려에 넣고 단계적으로 물가체계를 재조정하는 시간계획을 편성해서 물가기능은 살려가되 그 여파는 재정·금융·외환정책이나 물가조정 책으로 가능한 한 상살 시키는「폴리시·믹스」표가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짜임새 있는 조정계획이 집행되지 않는다면 물가정책도 실효를 거둘 수 없거니와, 어차피 단행되어야 할 가격체계의 조정이 원활히 되지 않음으로써 자원을 낭비하는 역효과가 파생할 것이다. 그 동안의 경제정책은 그러한 측면에서 미흡했기 때문에 가격기능이 발휘되지 않으면서도 물가는 물가대로 오르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말해서 행정력은 가격조정의 시간「스케줄」을 조화시키는 범위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지, 가격체계를 왜곡시키는 결과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끝으로 물가체계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며 국제경제 여건도 원유가격인상으로 달라질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의 국제수지·성장·투자계획, 그리고 외자계획은 당연히 재검토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격체계의 형성 과정에서 일반소비자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재정기능도 다시 한번 검토되어야 한다. 「인플레」기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기업의 외형과 이윤은 확대되는 한편, 봉급생활자·금리생활자 등 정액소득자는 희생되는 것이 통례다. 특히 우리의 경우 금리생활자 등 재산소득 층은 내자동원이라는 명분 때문에 조세상으로 과보호되고 있는 반면, 근로소득 층은 실질 구매력의 감퇴나 누진세율의 압력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음을 배려해야한다.
요컨대 가격기능을 살리기 위한 물가체계의 조정은 원칙적으로 단행되어야 하나 그 집행은 단계적으로 상응한 보완시책과 곁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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