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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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해방 후에 발족한 학회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1952년 3월 1일 발족) 또 가장 꾸준하게 활약해 온 학회중의 하나가 역사학회(대포간사 이기백)다.
역사학회는 20세기 후반기에 있어서의 한국의 역사학을 명실 그대로 대변해 주는 학회라 해서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역사학회는 방학기간을 제외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연구발표회를 가져 왔다.
그 회수는 현재까지 무려 1백80회. 연구의 발표와 이에 대한 토론은 학계에 새로운 전통과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으며 또「학보」에 논문을 발표하는 기초가 되기도 했다.
「역사학보」는 처음 부정기로 간행되다가 10수년 이래로는 계간으로 간행되어 현재 66집까지 나왔다.「역사학보」는 국내외에서 한국역사학의 대표적 학술지로서 널리 인식되어 있다.
국사학분야는 물론 동양사·서양사분야를 망라하여 회원 수 6백여 명을 포용하고 있다. 역사학회의 주임무는 연구의 발표와 토론 및 학보의 간행. 그러나 이밖에도 사론 집으로 「한국사의 반성」을 발간했다. 이는 한국사를 어떻게 새로이 볼 것인가 하는 방향모색에 크게 공헌했다. 또「실학」입문서로서「실학연구입문」「한국사자료선집」(5권)을 간행하기도 했다.
「역사학보」는 개별적인 논문을 발표할 뿐 아니라 학계의 동향에 항상 주목하고 토론의 광장을 마련함으로써 한국역사학의 발전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해 왔다.
최근 3년간의 업적만 하더라도「회고와 전망」(60집) 같은 특집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 첨성대에 관한 논쟁(64집)이나 고려사회의 관료제 설에 대한 논쟁(58집)은 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 두드러진 예에 속한다.「역사학보」는 한국사·동양사·서양사 등 여러 분야의 상호협력을 큰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한 관계로 역사연구의 방법론 같은데 항상 주력해 왔고, 이것이 한국사연구의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공헌했다.
◇한국사론=한국사논문은 학보에서 가장 무거운 비중을 차지해 왔는데 최근 3년간의 업적을 들면 사회사와 사상사방면에 획기적인 논문들이 계속 발표되어 국사학계에 자극과 활력을 주었으며, 특히 신라의 사회나 선종, 그리고 이조의 민족사상이나 한말의 기독교에 관한 논문들은 국사학계의 큰 수확으로 손꼽히고 있다.
◇동양사=동양사에서는 전통사회에 관한 것 이외에 최근에는 특히 근대의 외교정세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파헤친 야심적인 논문들이 발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서양사=서양사에서도 고대로부터 많은 문제가 다루어졌으나 최근 3년간에는 특히 근대의 사회사상이나 사학사상을 근본사료에 입각하여 다룬 수준 높은 연구들이 발표되어「역사학보」의 국제적인 성가를 높여 준 계기가 되었다.
◇업적=역사학회가 발족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는 우리나라의 커다란 사회적 격동기였다. 이 격동 속에서 역사학회는 좌고우면 하는 일없이 학자가 민족을 위하는 길은 오직 학문적인 진리를 탐구하는데 있다는 신념 밑에서 학회회원들의 한결같은 협조로 알찬 학보를 꾸준히 발간해 왔다. 이것은 모든 회원들의 학문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성취시킨 하나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역사학회의 업적을 함축하면 ②선구적 역할 ②전진적인 자세 ②순수학문지향의 활동 ④자주적인 노력 ⑤지속적인 발전 ②국내외학계의 인정 등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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