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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동기에서 창조의 엔진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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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재승
KAIST 교수
바이오 및 뇌공학과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대니얼 핑크는 자신의 저서 『드라이브』에서 ‘제3의 욕구’가 창조적인 사람들을 움직이는 자발적인 동기라고 주장한다.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과 흥미를 충족하기 위해 일할 때, 즉 일이 놀이가 될 때 훨씬 더 나은 성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온 에피소드로 설명한다. 폴리 이모는 톰 소여에게 울타리에 페인트 칠을 하라고 시킨다. 며칠을 해도 다 끝내지 못할 지경의 노동이다. 따분해하고 괴로워하던 톰은 지나가던 벤을 보는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벤이 톰의 불쌍한 운명을 비웃고 지나가자, 톰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울타리에 페인트칠을 하는 건 너무 재미있는 자신만의 환상적인 특권”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톰의 말에 홀딱 넘어간 벤은 자기도 한 번만 칠하게 해달라고 애걸하지만, 톰은 단번에 거절한다. 톰이 계속 거절하자, 결국 벤은 먹고 있던 사과까지 주면서 칠할 기회를 구걸한다. 다른 아이들까지 모두 톰의 덫에 걸려들어, 톰 대신 울타리를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씩 칠하게 된다. 그것도 즐겁게 열심히.

 대니얼 핑크는 흥미로운 경험도 보상과 처벌이 따르는 일이 되면 흥미가 떨어지고 효율도 낮아지지만, 자발적 동기로 임하면 힘겨운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현상을 ‘톰 소여 효과’라고 불렀다. 놀이가 일이 되는 순간 창의성이나 즐거움은 사라지며, 일이 놀이가 되는 순간 몰입해 즐길 수 있는 경험 말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과 기관들은 ‘톰 소여 효과’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직은 좋은 성과를 낸 구성원에게 더 많은 월급을 제공하는 연봉제를 시행한다. 좋은 실적을 올린 직원에게 특별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하위 20%의 성과를 보인 직원은 연봉을 삭감하거나 비선호 지역으로 발령을 내린다. 이런 제도가 직원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연봉제와 인센티브 제도는 단기적으로는 직원들을 성실하게 만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을 즐기고 열정을 바칠 의욕을 꺾는다. 창의적인 성과는 자발적인 동기로 일에 몰입하고, 뜻을 같이하는 직원들이 열정적으로 협업할 때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에게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에는 생리적인 욕구나 보상/처벌에 민감한 욕구 이상의 동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MIT 경영대학원 교수인 더글러스 맥그리거 교수는 매슬로 이론을 경영학에 접목해 경영진이 직원들의 자아존중 욕구, 자기실현 욕구를 존중할 때 기업 실적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특히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테레사 애머빌 교수는 성실하고 주의집중을 잘하면 되는 일반적인 연산적 업무는 당근과 채찍이 좋은 효과를 가져오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발견적 업무에는 외적 보상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창조적인 업무에는 대니얼 핑크가 말한 ‘제3의 욕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직 기업과 기관은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60년 전 이론인 ‘매슬로의 욕구 5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숫자로 평가하고, 실패에 책임지게 하고, 처벌과 보상으로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수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조직이 고민해야 할 것은 직원들이 자발적인 동기로 가득 차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주어야 한다. 시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서 진행되는 업무 중에서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스스로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미국 기업이 내게 맞는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업무 조정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관에서 벌어지는 일의 80%는 처벌과 보상으로 독려하고 평가하더라도, 20% 정도만은 새로운 방식의 도입이 필요하다. 직원들에게 평가 때문이 아니라 의미와 보람 때문에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안정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창의적인 혁신은 일을 놀이처럼 즐거워서 하려는 자발적 동기로 충만한 사람들이 만들어낸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기며, 창조와 몰입의 즐거움이 인생의 큰 보상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그들을 독려해야 한다. 그것이 행복 속에서 혁신을 이끌어내는 길이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