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부채정리」추경 예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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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무부는 1일 각시·도에 「지방관서 부채정리요령」을 시달했다. 일선 시·군 단위 행정기관에서 서정쇄신 작업(4월1일)이전에 진 외상 음식값·섭외비 등 각종 부채를 오는 30일까지 추경예산을 편성하여 갚도록 지시한 것이다.
내무부 산하의 각 행정기관에서 진 공식·비공식의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그 빚을 특별히 추경 예산까지 편성하여 갚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라면 그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내무부의 이번 지시는 국민들에게 위성을 주는 또 한가지 「양성화 조치」라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는 곧 관청 「빚」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정리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번 양성화로 모든 국민은 뜻하지 않게 「관폐」를 입게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국민으로서는 우선 관청이 도대체 얼마나 무절제한 살림살이를 했기에 이토록 부채가 누적되었는가 의아심을 금할 수 없지만, 한편으론 만일 서정 쇄신 작업이 단행되지 않았더라면 공무원 사회의 음성화한 병리현상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겠는가를 상도, 일종의 안도감마저 느끼게 된다.
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를 추방하기 위한 서정쇄신 작업은 시작된지 6개월이 되는 지금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는 내무부의 이번 「부채 정리 추경 예산」편성 시달이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정 쇄신 작업이 아니었다면 관청이 진 부채는 대체로 부정한 편법이나 민폐 등의 미봉책으로 우물우물 처리됐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본래 공무원 사회의 이 같은 부조리의 원인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는 공무원 자신들의 부정·부패이고, 둘째는 관료제에 내재한 일반적 폐단이 바로 그 것이다.
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는 근원적으로 수준이하의 저 급여, 기강의 해이, 봉사정신의 결여, 정년퇴직 후의 생활보장에 대한 불안감 등 복잡한 요인을 손꼽을 수 있다. 그밖에도 관료제에 내재한 폐단으로서 행정권의 비대화, 부패 억지 장치의 부실, 번잡한 서식과 선례주의, 형식주의·보신주의·부서주의 등이라 하겠는데 이런 폐단이 뒤얽히면 자칫 『정해진 직무를 남용하고 있는 관리로 구성된 관청』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무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자기들이 진 음식값·교제비 등의 빛을 갚는 명분 없는 일을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민폐와 민원의 소지를 그 뿌리부터 철저히 없애는데 힘써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오늘날 하나의 풍조로 번지고 있는 관청가의 외화주의를 청산하여 관청전반에 건실하고 절약하는 기풍을 진작해야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나라 예산회계 제도의 과학화라 하겠으며, 모든 사업과 경비의 집행이 현실성에 맞는 예산적 뒷받침을 가질 수 있도록 예산제도 자체의 혁파가 긴요하다 아니할 수 없다.
행정 당국은 국민들에게 막대한 불이익을 준 이번과 같은 떳떳치 못한 조치를 두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당국은 한푼의 경비 지출에도 그것이 국민의 혈세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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