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속에 울리는 말…『자기 직분에 맞게』| 현승종 <성균관대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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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금으로 말하면 중학생 시절, 그러니까 내가 어릴 때의 일이다. 어떤 명사가 훈시인지 강연인지 하는 가운데, 「교원은 교원답게, 학생은 학생답게…」처신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 그 말이 항상 인상에 남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늘과 같은 분업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은 각자 맡은바 직업상의 본분이 있으며 그것을 마땅히 지켜야할 의무를 진다.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그렇고, 상인은 상인으로서, 기업인은 기업인으로서, 관리는 관리로서, 문학인은 문학인으로서 그러하다. 이 모든 개인들이 제 각기 자기의 본분을 지키고 의무를 다한다면, 그 개인은 개인대로 세속적 영달과 인문으로서의 사는 보람을 찾을 것이요, 그 개인이 포함되어 있는 사회와 국가는 번영과 발전을 누리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업인으로서의 주어진 본분을 다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요즈음 한창 제거되고 있는 부조리의 주인공들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직분을 지킨다는 말속에는 두 가지 내용이 있을 것 같다. 그 하나는 주어진 직분의 범위 안에서 본분을 남김없이 다한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본분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 있다는 말이다. 직분의 범위를 이탈하여 언행 하는 것은 남의 직분을 침범하는 결과가 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함부로 함으로써 남의 일을 방해하거나 남에게 해를 입힐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분에는 그것을 지키고 수행해야할 의무가 내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당위적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에는 필연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마련되어 있다. 의무자를 강제해서 직분을 지키게 하고, 또는 의무를 다하지 않은데에서 생긴 결과에 대하여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컨대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배상도 하고 또는 직분을 생기게 한 지위를 물러나기도 한다.
여기에서 책임을 지는 일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데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어려움이 있다. 실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한국적 난점은 책임과 권리, 규율과 자유가 자기 중심적으로만 해석되고 고집되는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을 통하여 『내가 책임지고…』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 말이 자주 쉽게 쓰여지는데에 비하여 실제로 피해를 배상하거나, 자리를 물러나는 등으로 책임을 지는 일은 그다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모르거나, 반면에 인책이라는 표현의 남발을 태연하게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자유를 누리는 데에 장애가 되고, 사회의 복리를 증진시키는데에 저해적 요소가 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국민 개개인이 잘 살게 되고, 그 개인이 사는 사회가 번영하고,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충실하게 지키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자진하여 정직하고 엄격하게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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