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정신적 근원|한철하 목사 <서울 동신 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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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해방되던 해에 온 겨레가 해방의 감격에 잠겨서 기뻐 어쩔줄을 몰랐었다. 그러나 지금 해방의 감격과 우리의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사실 70년대 중반을 거치고있는 오늘의 세계 현실 전체가 해방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있다고 보여진다. 따지고 보면 그 당시의 우리 해방된 기쁨을 냉혹하게 깨뜨려 버린 것도 우리 자신이 아니었고 미·소 대립과 남북 분단이란 국내외적 현실이었다. 어렵게 보면 우리민족은 마음으로 언제나 해방을 경험하는데 우리의 국제적인 현실이 이것을 깨뜨려 버린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해방을 저해하는 요소는 또한 우리 민족 자체 속에서도 스며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방 후의 우리는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사용했나 생각할 때에 사실 우리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해방은 사실상 각종 죄악의 해방으로 나타났었다. 해방이 되자 거리는 무질서하게 되고 구석구석이 더러워지고 판잣집은 무질서하게 어느 구석에나 어느 산비탈에나 수 없이 들어서고 폭력·도둑·날치기가 횡행하고 각종 사기 행각에 적산 쟁탈전 등 사실 모든 죄악은 크게 범람하였다. 「파인애플」 통조림을 한통 샀더니 녹슨 물 속에 손톱만한 「파인애플」이 한 조각 떠 있을 뿐 장식만 화려하게 되어 있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해방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 인간이 즐기는 자유나 해방은 그 깊이와 질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볼 수 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의 깊은 뜻은 3·1독립 선언에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강권주의의 낡은 시대를 박차고 이제 자유·평화·도의의 새시대가 전개되는 하나의 여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뜻깊은 해방 30년을 보내면서 사실 우리 주변에 이와 같은 새시대가 도래하였는가를 반문할 때에 더 할 말이 없다. 오늘날 역사는 거꾸로 되돌아 가 버렸다는 느낌마저 든다.「아시아」전역을 휩쓰는 기운은 마치 먹구름처럼 짙게 전 세계의 하늘을 뒤덮고 있다.
해방의 가장 깊은 차원은 용서와 은혜의 깊은 경험에서 열린다고 나는 생각한다. 은혜 안에서만 해방의 참된 의미를 나는 언제나 맛본다. 해방 30년간 오늘의 비 해방 적인 역사 분위기를 헤치고 나가는 원동력도 나는 이 은혜의 새 세계를 완강하게 붙잡고 나가는데 있다고 본다.
옛날 「앗시리아」 군대의 진군의 말발굽 밑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이스라엘」 예언자가 외쳤던 것처럼 해방 30회의 비 해방 속에서 우리는 해방의 정신적 근원을 굳게 붙잡고 나가 끝내 참 해방의 세 아침을 맞이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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