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봉」과 「봉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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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봉」은 몰라도 「람바레네」를 아는 사람은 많다. 「슈바이처」 박사가 인류애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의료소를 설치했던 곳. 벌써 60여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슈바이처」 박사는 그후 자신의 「아프리카」 생활에 관한 많은 저술들을 남겨 놓았다.
「람바레네」의 인상은 누구나 「아프리카」를 생각할 때 연상할 수 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질병이 만연해 있고, 사람들은 그것이 악령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다.
「슈바이처」 박사를 그곳 사람들은 『오강가』라고 불렀다. 마술사라는 뜻이다.
그러나 「람바레네」 사람들은 인정 있고 도덕적인 품격을 갖고 있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그들이 인생의 의의나 선악의 본질 같은 근본 문제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진료비가 없으면 사람들은 「바나나」·닭·계란 등을 「슈바이처」 박사에게 놓고 가기도 했다. 「슈바이처」는 바로 밀림 속에서 생명외경의 사상을 터득했다.
「가봉」은 15세기말 「포르투갈」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다. 수도 「리브레빌」의 이름엔 유래가 있다. 1849년 영국과 「프랑스」가 「카프 로페스」만을 함대기지로 삼고 노예해방의 근거지로 제공했다. 『자유의 도시』라는 뜻으로 「리브레빌」이라고 명명했다.
「가봉」이 「프랑스」에서 독립한 것은 1960년8월17일. 면적은 한반도보다 넓은 26만여평방km지만 인구는 겨우 95만 정도다. 「슈바이처」박사의 글을 보면 화주·전염병 등이 이곳 주민의 수를 날로 줄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 15년째인 오늘의 「가봉」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 풍부한 목재와 철에, 「우라늄」 「망간」 등 귀중한 광물질, 그리고 석유마저 적지 않다. 일본은 어느새 이 나라에 30억「엥」의 차관을 주어 철도를 건설할 단계에 있다.
「아프리카」의 제국들엔 군정이 난무하고 있지만 「가봉」만은 몇몇 안되는 예외 중 하나다.
정치의 기본노선은 의젓한 실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퐁피두」 고 「프랑스」대통령은 구식민지였던 「가봉」을 『우등생』으로 칭찬한 일도 있었다.
「봉고」대통령은 1967년 32세의 청년으로 국가원수에 취임했다. 정부는 취임직 후 대통령의 얼굴 사진을 「프린트」한 「샤스」를 국민들에게 나누어주어 이 청년지도자와 친근감을 갖게 했었다.
국민소득은 73년의 경우 1인당 6백75「달러」에 이르러, 「유럽」의 「그리스」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인구가 적어 고민하는 것도 재미있는 예외일 것이다. 피임약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을 정도다.
우리는 멀고 아득한 곳에 있는 나라와도 그 국가원수를 초청할 만큼 외교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럴수록 이 진객에게 친절을 베풀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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