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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뺄셈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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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인식
강인식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십고초려(十顧草廬)에 삼고지례(三顧之禮)를 다했다. 삼고초려 제갈량은 유비의 아들에게까지 충성했는데, 더한 집요함으로 모신 이들은 100일을 못 채웠다.

 지난해 5월 안철수 의원은 “십고초려했다”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싱크탱크의 수장으로 영입했다. 몇몇 기자가 “임명했다”는 표현을 쓰자, 격(格)에 맞지 않는다며 영입으로 써 달라고 했다. 최 교수는 “이렇게 집요하게 진정성을 가지고 저를 대했던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80일 만에 결별했다. 최 교수는 “다시 만날 일은 없다”고 했다.

 올 1월 안 의원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영입하며 “팔고초려로 모셨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9번을 만날 때마다 도움을 청하는데, 이 사람이 집요해졌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단번에 의장에 올랐다. 그리고 33일이 지나, 8일 조간 1면에 “이 자가 내게 얼마나 거짓말했는지 알아야겠다”는 그의 울분이 보도됐다.

 지난해 가을 최 교수는 지인과의 자리에서 안 의원의 의사결정 방식을 언급했다고 한다. 지인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안 의원에게서 철인통치를 느낀 것 같다”고 했다. 만인에 의한 통치(민주주의)를 중우정치로 비판하며 플라톤이 내세운 이상적 통치 시스템이 ‘철인(哲人)에 의한 정치’다. 안 의원이 홀로 고민하고 홀로 결정한다는 얘기인가.

 윤 전 장관의 토로는 보다 구체적이다. 그는 “안 의원이 공적 기구를 무시했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창당준비위원회는 민주당과의 합당 내용을 전혀 몰랐다. 논의에서 완벽하게 배제된 서열 1위 의장 윤여준.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한때 안 의원의 멘토였던 김종인 전 장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대선에 나오려면 신당을 만들어 2012년 총선에 나서야 했다. 당시(2011년) 인기와 힘이면 40명 정도의 당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안 의원은)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안철수를 이용해 득세하려는 노회한 책사가 문제”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윤 전 장관은 5공 시절엔 청와대 비서관, 김영삼 대통령 땐 대변인과 장관, 이회창 총재 시절엔 특보를 지냈다. 2004년 탄핵 국면 땐 박근혜 대표의 총선기획단장을, 2006년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고,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2011년 안철수의 멘토를 자처했고, 2012년엔 문재인 캠프에서 지원연설을 했다.

 만남과 이별엔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지난 1월 ‘썰전’은 안철수와 윤여준의 재회를 결혼이란 단어로 풀어냈다. ▶강용석: “헤어졌던 사람은 다시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 좋은 기억만 남아 다시 만나도, 과거에 헤어졌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결국엔 헤어지게 되거든요.” ▶이철희: “결혼은 판단력 부족으로, 이혼은 인내심 부족으로, 재혼은 기억력 부족으로 한다고 하잖아요. 또 헤어지면 정말 끝인데, 둘 다 선수인데 또 그러겠어요.”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