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반공 '사상검사' 출신 선우종원 전 국회사무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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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사무총장으로 국회의사당 건립을 지휘한 선우종원(사진) 변호사가 8일 별세했다. 96세. 호는 주암(周巖).

평안남도 대동 출신으로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현재의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평양에서 해방을 맞았다. 소련군의 약탈을 보고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낀 그는 월남해 반공 사상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1951년 장면 전 총리의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52년 부산 정치 파동 이후 8년간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고 난 60년 귀국해 조폐공사사장을 맡았지만, 5·16 군사정변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구형받아 2년 반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64년 8·15 특사로 석방된 후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그를 불러 “아랫사람 말만 듣고 오판을 했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생전에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윗사람이 그렇게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박정희 정부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을 거쳐 71년 국회 사무총장직을 맡게 된다. 국회의사당 건립을 진두지휘한 그는 두 번에 걸쳐 총 5년간 최장수 사무총장을 지냈다. 회고록 『격랑 80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당신을 국회 사무총장으로 천거할 생각인데, 현재 추진 중인 국회 건물을 동양 최대의 의사당으로 세워달라”는 요청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에는 반대했지만 국민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며 “의사당을 지을 때도 박 대통령이 ‘아직은 단계가 아니지만 후일에는 입법기관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릴 것이니 그때를 대비해 크게 지으라’고 한 대목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읽고 이를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5년간 심혈을 기울여 지은 의사당이 지금도 국회의원들의 싸움터가 되고 있는 게 안타깝다”는 말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아들 재호(사업)·중호(전 서울대 총장)·찬호(재미 특허변호사)·진호(재미 과학자)·석호(홍익대 교수)씨와 딸 정자, 사위 오현택(재미의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11일 오전 7시. 2072-2011.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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