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가야」로 가는 길(2)|<제자=이은상>|노산 이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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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라즈기르」(왕사성)에서 남으로 64㎞를 내려가면「가야」(가야)라는 큰 도시가 있다.
인구는 15만 명이나 되는데 구 시가와 신시가로 나누어져 있어 구 시가는 토착 인도인들의 주택이 밀집해 있는 곳이요, 신시가는 영국 식민지시대에 지은「유럽」식 현대 건축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곳이다. 그러나 거리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 서울 남대문시장 같은 거리 복판에 조금도 과장 없이 50∼60명의 거지들이 한 줄로 열을 지어 앉아서 저마다 손을 내밀고 구걸하는 꼴이란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비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6억이 넘는 인도 인구라 대중생활의 궁핍 상이 인도 국내 어느 도시에서든지 이와 비슷한 꼴을 보이고 있다는 데는 인간으로서 민망스럽다기보다는 아픈 마을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헤아려 보면 중생의 괴로움과 슬픔이 다만 어찌 이 같은 생물적인 조건 만이겠느냐. 그러기에 불타는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고, 그래서 마침내 큰 깨달음을 성취한 것이 아니었더냐.
불타가 출가하여「라즈기르」로 와서 선인들을 만나 보고, 그들에게 도를 물었으나 자기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다시 그대로 걸음을 내켜 남으로 내려온 곳이「가야」를 지나 「부다가야」(불타가야) 채 못 미쳐「우루벨라」(우루빈라)란 마을이었고 그 마을 숲 속에서 6년 동안 고행을 쌓았던 것이기에 나는「부다가야」로 가는 도중 길가에 있는「우루벨라」마을 유적지에 발을 멈췄었다.
지도론 삼십사에
『석가무니가「우루벨라」숲 속에서 참깨(호마) 한 줌, 쌀 한줌씩 먹고 있었다』
하고, 그 주석에「우루벨라」는 나무 이름으로서 번역하면「목과」(모과)라고 했음을 보면「우루벨라」숲이란 바로 목과림이요, 그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음을 알 수 있거니와 불타가 그 숲 속에서 고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문경전에는「고행림」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고행이란 범어로「타파스」라 하며, 인도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외도의 가르침이었으므로, 불타는 수도하러 나선이상 일단은 그 고행을 시험해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 이 고행림 속에서 고행하던 이는 불타만이 아니었다. 그의 동지가 다섯 사람이나 있었고, 또 다른 수행자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불타는 6년에 걸쳐 가장 극한적인 고행을 감행하여 한 때는 불타가 죽었다고 까지 전해지기도 했었다.
마침내 불타는 그 고행 속에서 큰 진리를 깨달을 수 없음을 알았다. 죽음에 이를 정도로 육체를 괴롭힌다는 것은, 그것 때문에 마음의 평안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마음이 산란해지는 역현상이 생겨질 뿐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불타는 단연히 고행의 길을 버리고 일어섰다. 6년 고행을 조금도 미련이 없이, 하루 아침에 털고 일어선다는 그 결심이 더욱 무서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음의 안정은 오히려 건전한 육체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임을 깨닫고, 불타는 먼저 고행림 가까이 흘러가는「리라쟈나」(니련선하) 냇물에 들어가, 6년 동안의 묵은 때를 씻었다.
이 냇물 이름을 뜻으로 번역하면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한문경전에는「불락착하」라고도 적혀 있거니와 지리적으로 말하면, 이 냇물이 북으로 흘러「모하네」강과 만나고, 다시 흘러「팔구」강에 합류하여 그대로「간지스」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같이 목욕하고 난 불타는「리라쟈나」냇가 마을에 사는「스잣다」라는 어여쁜 처녀로부터 우유 죽을 받아 마시고 차차 건강을 회복했거니와 불타는 그 뒤 평상시에도 제자 비구들과 함께 항상 죽(죽) 공양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음식 중에「죽」을 대단히 소중하게 여길뿐더러 사분 율에는 깨죽·콩죽·우유 죽 등 죽의 여덟 가지 종류와, 기갈을 덜고 풍증을 막는 등 죽의 다섯 가지 이익을 설명하기까지 했음을 본다.
나는「우루벨라」고행림의 유적인 모래언덕을 거닐며 불타의 옛 행적을 생각하면서 노래 두어 장을 읊어 보았다.
「우루벨라」모래 언덕
거닐며 그려본다
「리라쟈나」냇물에
목욕하던 부처님을
오늘은 나도 여기 와
마음의 때를 씻고 간다
「스잣다」이쁜 아가씨
바치는 우유죽을
부처님 받아 들고
응당 웃고 마셨으리
길 가에 차 파는 여인
혹시 아가씨 후신일런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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