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근대 프랑스에서 초상화가 유행한 이유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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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몸의 역사 1-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
다니엘 아라스, 로이 포터
조르주 비가렐로 외 지음
주명철 옮김, 길, 630쪽, 4만5000원

‘내 몸은 소중하니까.’ ‘몸’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을 활용한 앙증맞은 광고 카피다. 도대체 몸이 언제부터 이렇게 ‘소중’해졌을까. 과거 사람을 사회의 부속품 정도로 여겼던 시절엔 몸이란 기껏해야 ‘죽으면 썩을 몸뚱이’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개인이 중시되고 자아실현이 삶의 핵심이 되는 시대가 오면서 몸의 신분은 수직 상승했다.

 이 책은 학제간 연구를 통해 몸에 대한 인간 인식의 역사를 살핀 전 3권 시리즈 중 첫 권이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프랑스·영국·이탈리아의 연구자들이 손잡고 몸이라는 모호한 대상에 치열하게 접근한다. 시대를 씨줄로, 사회역사학·미술사·문화인류학·미시사학·여성 및 젠더학·의사학 분야 등을 날줄로 각각 삼아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들은 종교·의학·목욕·미용·강간·신체교정·스포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인 분석을 꾀한다.

 역사학자는 근대 초기 몸에 대한 인식의 지평 확대가 자아에 대한 개념 확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데 주목한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육신 덕분에 서양에선 중세까지 몸은 신비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이후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이성이 주도하는 세상이 열리고 개인이 중요하다는 자각이 이어지면서 몸은 종교적 신비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이성적 존중의 대상으로 변신한 것이다.

 미시사적인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유산 목록에서 개인초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17세기 18%에서 18세기 28%로 껑충 뛰었다. 반면 종교화의 비율은 29%에서 12%로 줄었다. 몸에 대한 인간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증거다.

 의사학자는 근대가 몸을 신화와 미신에서 독립시키고 자아와 연결하는 데서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근대 초기까지 민간 의학에선 몸이 12궁의 상징이나 천체·사계절·기후에 영향을 받는다고 여겼다. 이에 따른 체액의 이상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단정했다. 예로 달이 여성의 월경을 통제하고 머리카락과 식물의 생육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색깔·형태·냄새·열·습기 같은 자연 요소가 인체에 불길하거나 이롭게 작용한다고 봤다. 그래서 혈액 장애에는 피와 같은 붉은색인 제라늄이나 고추기름을, 얼굴이 노래지는 황달에는 노란색인 팬지나 미나리아재비를 각각 약으로 썼다. 근거도 부족한 엉뚱한 해석과 유추의 결과다. 민간 의학이 몸에 대해 이성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한 현대 의학에 완전히 밀린 이유다. 결국 몸에 얽힌 신비성을 극복하고 객관성을 회복하는 것이 문명의 길이라는 뉘앙스가 읽힌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와 방향에서 몸이라는 대상에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신선함이 느껴진다. 합주에서 서로 다른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새로운 차원의 소리를 창조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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