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영원한 자유 깃들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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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임진강=조동국기자】『한국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숨진 전우들의 이름으로 이 땅에 자유가 영원히 깃들기를 빕니다. 그대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장군은 6·25동란 때의 격전지를 24년만에 돌아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
초대 주한벨기에군 사령관(당시 중령)으로 참전, 6·25전투가 한창 치열할 무렵인 51년4월 임진강의 격전을 치렀던 크라헤이 장군(70·전 벨기에3군 참모총장)은 이름없이 죽어간 병사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태극기와 벨기에기가 박힌 꽃다발을 강물에 띄우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51년4월22일 소위 중공군의 1차 춘계대공세가 임진강전역에 펼쳐질 무렵, 벨기에군은 한탄강이 합류되는 지점 194고지에 2박3일동안 중공군 2개 사단과 맞서 25명이 전사하고 60여명이 부상하는 격전을 치렀다. 그후 50시간에 걸친 철수작전을 무사히 끝냄으로써 벨기에군의 용전은 한국동란을 통해 손꼽히는 작전으로 알려지고있다.
크라헤이 장군은 이 무렵의 전투를 바탕으로 66년에 2백60페이지에 달하는 한국참전사를 발간하기도 했다.
당시 부중대장이었던 얀센씨(현 벨기에 한국참전전우회 부회장)와 메이스씨(당시상사)등을 대동한 크라헤이 장군은 현재 소요산 입구에 건립중인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기념비 건립공사장(7월30일 준공예정)에 들러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소요산전투 때는 포병부대에 포 지원을 요청, 밤새도록 중공군에 포 세례를 가하던 때가 통쾌했다고 말했다,
크라헤이 장군은 돌아오는 길에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에 있는 영국군 전적비를 찾아 묵념을 올렸다.
험준한 계곡에 싸인 곳은 벨기에군이 임진강전투를 벌이던 같은 시기에 영국군 글로스타 연대 제1대대가 중공군에 포위돼 3일동안 버티다 식량·탄약 등이 떨어져 참패, 무려 5백명이 무더기로 포로가 됐던 곳. 벨기에군은 이때 영국군을 구출하려다 끝내 실패, 1개월이 지난 5월28일에 벨기에군이 재탈환할 수 있었다고.
한편 이날의 격전지 방문길엔 과거 벨기에군에 배속됐던 한국인 사병 조경찬씨(44·서울 성동구 금호동3가1194)등 9명이 벨기에기 1개와 차를 몰면서 따라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당시의 크라헤이 장군은 머리가 검었는데 지금은 백발이 돼 처음엔 잘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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