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對北 경제제재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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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金正日)의 금고를 겨냥한 대북 경제제재를 검토 중이다. 골칫거리인 북한의 무기 및 마약수출을 차단,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국의 독불장군식 대북 경제제재는 뜻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압박과 함께 북.미 핵협상을 병행,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한·중·일 협조 없인 실효 의문

북핵 문제와 관련, 부시 행정부는 1993~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직면했던 "평양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만일 북한이 핵개발을 정권유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간주한다면 경제제재는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반면 평양이 핵문제를 워싱턴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협상카드로 생각하고 있다면 미국은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배합,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수 있다.

9년 전 상황과 비교할 때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과 1대1 협상을 배제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추측을 낳기에 충분하다. 혹시 백악관은 기존의 대북 개입정책과 남북화해 지지를 포기하고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기로 이미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한국도 새로운 변수다. 지난 5년간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한국 정부의 입장도 과거와는 다르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대북 경제제재를 취하려면 한국.일본.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한결같이 경제제재를 망설이고 있다. 우선 당사자인 북한은 만일 미국이 경제제재를 취할 경우 이를 "전쟁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공갈, 협박하고 있다. 한국도 대북 경제제재가 자칫 북한의 대남 도발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중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은 그동안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에 대북 압박을 가해줄 것을 줄곧 주문해왔다. 그러나 베이징(北京)은 평양과의 특수한 관계 등을 고려, 대북 압박카드를 빼들지 않고 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현재 단계적.선택적 대북 경제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가 검토했던 것과 유사한 이 제재방안의 핵심은 김정일의 돈줄을 차단하자는 것이다. 1단계에서는 북한의 통상적인 무역은 허용하되 불법적인 마약거래에 초점을 맞춰 이를 차단한다. 2단계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수출 등 무기거래를 차단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의 달러박스인 마약과 미사일 수출을 차단, 김정일의 금고를 텅텅 비게 만들자는 계산이다.

문제는 선택적 대북제재라고 해도 말이 쉽지 실제로는 이를 실행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제 미사일을 예로 들어보자. 북한의 중거리 노동미사일의 주요 고객은 중동의 이란과 시리아다. 그러나 이 국가들이 스스로 북한제 미사일 수입을 중단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앞서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북한의 미사일 화물선을 인도양에서 나포했다.

그러나 미국은 우방인 예멘과의 외교관계와 공해상에서 화물선을 나포할 만한 국제법적 근거가 희박한 나머지 북한배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공연히 체면만 구긴 셈이다.

결국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와 북.미 협상, 그리고 경제제재 카드를 적절히 배합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 북한의 마약 및 무기 수출이 국제사회 규범을 위반하는 행위임을 명백히 규정하는 한편 북한의 무기류 수출을 차단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만일 미국이 이 같은 결의안을 유엔에 상정한다면 일본인 납치 문제로 격앙된 일본도 기꺼이 찬성할 것은 물론 대북 송금 차단에 나설 공산이 크다.

또 상황이 이렇게 진행될 경우 한국과 중국도 대북 금전적 지원을 줄여나갈 것이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경제제재 카드를 포함한 일련의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미국이 협상의지를 북한에 허심탄회하게 밝혀야 하는 것은 물론 북한도 미국에 핵개발 의지 포기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킴벌리 앤 엘리어트 <美국제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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