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월세 땜질 처방, 시장 혼란 잠재울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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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 정책은 정교해야 한다. 특히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면 정책이 미칠 영향과 효과를 사전에 면밀히 검토한 뒤 시행해야 부작용을 줄이고 혼선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려면 정확한 시장 상황과 통계부터 파악한 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교하지 못한 제도 개선안을 불쑥 발표했다간 시장의 반발로 정책 효과가 흐지부지되거나 며칠 만에 보완대책을 내놓아야 하기 일쑤다. 지난달 26일 발표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2·26 전·월세 대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어제 주택임대소득이 연 2000만원 이하인 집주인에 대해서는 세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 등의 2·26 전·월세 대책 보완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2년간은 세금을 물리지 않되 세율 14%인 분리과세는 2016년부터 적용하고 필요 경비율도 60%로 올려주는 내용이 담겼다. 월세 임대자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 전세 보증금에도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지난달 대책 발표 후 시장 불만이 커지자 일주일 만에 부랴부랴 ‘땜질 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달 발표한 전·월세 대책은 임대차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현실을 반영, 월세 가구의 세 부담을 줄이고 과세 사각지대였던 고액 임대자에 대한 세금 추징은 늘려 민생 안정과 내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게 골자였다. 큰 방향은 맞았지만 대책이 발표되자 시장에선 “은퇴자 등 생계형 임대업자가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일부 집주인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고 월세 공제혜택과 확정일자인까지 받지 않는 조건을 세입자에게 제시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정부 의도와 달리 월세에서 전세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시장 반응에 따라 춤추는 대책으론 정책 효과를 제대로 낼 수 없다. 이번 보완책도 단기적 시장 안정 효과는 있겠지만 임대차시장의 과세투명성과 과세 형평이란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해 보인다. 정부는 먼저 시장 통계부터 제대로 작성해야 한다. 세금을 내지 않는 임대사업자가 몇 명인지, 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임대사업자 등록 의무화 조치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졸속입법 시비도 피하고 땜질 처방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