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서약서 논란 재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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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정부의 준법서약서 제도 폐지 방침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법이나 통념이 유지해온 이념.사상적 좌표와 어긋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이라서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한총련 대학생 수배 해제 검토 지시, 검찰 공안부 축소 추진 등과 궤를 같이하는 또 하나의 변화다.

찬성하는 쪽은 헌법이 보장한 사상의 자유, 그리고 이 제도의 낮은 실효성을 이유로 들고 있다.

민변 소속 임영화(林榮和)변호사는 "사상의 자유를 언급하기 이전에 누군가에게 법을 지키겠다는 말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는 심리적으로 부담을 줘 특정인이 가진 사상이나 소신을 스스로 버리도록 하는 부당행위"라고 주장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도 "현재의 준법 서약은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준법서약서 작성 대상자는 대부분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기 때문에 국보법 존폐가 결정되지 않은 시점에서 먼저 논의할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다.

특히 새 정부의 검찰 공안부 대폭 축소 분위기 속에서 준법서약제마저 폐지되면 수사기관의 공안업무가 사실상 무의미해진다는 우려도 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현행법상 공안사범은 중대한 범죄자인데 이런 사람을 사면하거나 가석방하면서 법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 준수 약속을 하기 싫으면 재판 결과 만큼 처벌을 받으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변협 공보이사를 지낸 하창우 변호사는 "준법서약서 폐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그 취지가 최근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수배 해제 등과 맥락을 같이하거나 이를 위한 전제라면 지극히 위험하다"면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인 만큼 재고돼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준법서약서=법무부의 '가석방 심사 등에 관한 규칙'14조2항에 규정돼 있다. 공안사범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토록 한 것이다.

일제 때부터 내려오던 '사상전향제'를 1998년 폐지하면서 도입됐다. 그러나 진보 학계 및 일부 시민단체는 "준법서약서 제도는 사상전향제의 변형에 불과하다"며 폐지를 요구해 왔다.

준법서약 강요 자체가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또 99년 3.1절 특사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준법서약서 작성을 거부한 미전향 장기수 우용각씨 등 17명에 대해 특별사면을 내리면서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준법서약서와 관련된 헌법소원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림으로써 그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바 있다. "준법서약은 단순한 확인서약에 불과하기 때문에 양심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며 정책수단으로서의 적합성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강주안.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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