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중립의 붕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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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바나·푸마」 라오스 수상은 좌익세력의 「치욕적인」 전권 장악의 길을 터 주기 시작했다.
「사방· 바타나」 국왕이 입석한 제헌절 경축식전에서 행한 「푸마」수상의 연설은 우파와 중립파의 사관생도 1백 60여명의 좌 선회 반란과 때를 같이하고 있다.
사관생도와 학생들은 우파 각료와 장성들의 해임을 요구하면서 앞으로는 우파 지휘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현 중앙정부의 지시에만 따를 것을 선언했다.
「푸마」 수상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우파 각료를 해임하고 국방상 자리도 좌파에 맡김으로써 합법적인 형태를 취한 공산 「쿠데타」의 길을 연 것이다.
해임된 우파장성 중에는 미 CIA의 지원을 받는 「메오」족 출신 「방·파오」 장군도 끼어있으며, 「라오스」 우익의 거두인 「분·움」공도 들어있어 「파테트·라오」의 전권 장악은 피하기 어려운 전망이다.
이번 「라오스」 정변의 특징은 지금까지 좌파에 대해 평형을 유지해오던 중립파의 「푸마」 수상이 예하 군인들의 자선회 반란을 묵인한 채 국왕의 권위를 등에 업고서 3파 연정의 무혈 공산화를 자초하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제 「크메르」와 월남이 적화되고 미국의 인지 개입의사가 퇴색되는 마당에 「라오스」 3파 연정의 일각에 참여한 우익 장성들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는 심히 회의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라오스」에 있어서의 미국 CIA에 의한 비밀전쟁은 어디까지나 월남전쟁을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라오스」에서는 1964년 「제네바」협정에 의한 3파 연정이 붕괴되고 좌파와 중립 및 우파 사이의 전면 전쟁이 개시되었다가 1974년 4월 다시금 3파 연정이 구성되었으나 전국의 반 이상은 이미 「파테트·라오」군의 장악 하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하여 「라오스」 국왕을 떠받드는 중앙의 3파 연정이 고도처럼 떠있는 가운데 실질적으로는 좌우의 군부가 국토를 따로따로 분할하고 있는 기이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파데트·라오」는 「하노이」와 중공의 지원 하에 적화지구를 틈만 있으면 확장시키는 전투 행위를 거듭해왔으나 우파세력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갈수록 소극화 되었다.
태국을 통하는 육로에 의지하던 우파의 무역 활동도 태국의 정책변화로 막혀 버렸다. 우파는 존립기반을 잃은 셈이다.
이와 같은 취약한 3파 연정에 잠입해 들어온 좌파가 이웃나라들의 완전 공산화를 호기로 잡아 일거에 공산화작업에 착수했다는 사실은 「푸마」수상의 말과는 정반대로 결코 예상 밖의 사태만은 아닐 것이다.
공산당은 절대로 중립파나 우파와의 연정에 그대로 머무를 자들이 아니다. 연정이란 어디까지나 전면 공산화를 위한 전략적인 중간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2차대전 직후의 동구 각국에 있었던 연립 정권의 말로가 그 전형적인 사례다.
연립정권이 일단 궤도에 오르기가 무섭게 공산당은 「데모」족을 동원해 우파 축출 요구를 내 걸었고, 이내 현존 정부의 이름으로 우파를 제거하여 「합법」을 가장한 공산 「쿠데타」의 길을 텄던 것이다.
인지반도의 마지막 분쟁지역 「라오스」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공산화의 길에 들어섰다. 이와 같은 비극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절대로 반복되어서는 안되겠다. 거듭 공산주의자들의 연합정권 전략을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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