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를 적극 도와준 국제 「아마·스포츠」의 상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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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시 출생인 「브런디지」옹은 36년 IOC위원으로 피선된 후 45년 부위원장, 52년부터 72년까지 만 20년동안 위원장직을 맡아온 현대 「올림픽」운동의 선구자다. 「일리노이」대학 재학시절에는 농구와 육상에 전념했고 「올림픽」운동에 참여하면서 순수 「아마추어리즘」의 선봉자가 된 그는 「스포츠」계에서 옹고집 할아버지로 통해왔다.
47년 한국의 IOC가입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고 55년 고 이기붕씨를 IOC위원직에 피선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바통」을 고 이상백 박사와 현재의 장기영씨에게 물려주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제 「스포츠」계의 친한파이기도 하다.
IOC에서 남북한호칭문제와 단일 「팀」구성문제가 나올 때마다 우리편에 서서 계속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브런디지」옹은 3차에 걸쳐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동양고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시카고」에 있는 저택에는 한국미술품을 포함한 수만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부호.
20년간 「올림픽」운동에 앞장서온 「브런디지」옹은 동구권이 주축인 「스테이트·아마」의 대두와 변모하는 「아마추어리즘」에 굴복, 「뮌헨·올림픽」을 끝으로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뮌헨·올림픽」을 끝으로 「스포츠」일선에서 물러선 그는 72년 당시37세의 서독출신의「뮌헨·올림픽」안내양과 전격결혼, 또 한번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향년 8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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