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6)<제45화>상해임시정부(31)|조경한(제자 조경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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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결자해지>
채씨는 나를 보자 먼저 입을 열었다.
『다소 풀리기는 했으나 아직도 유감이 없지 않소.』
『그게 무슨 말씀이요.』
『오 사령께 지청천 장군과 공동지의 석방을 간절히 얘기했더니 짜증을 버럭 냅디다.』
『짜증이라니요.』
『오 사령 말이 독립군 수백명을 놓아주고 겨우 두 명이나 처단할까 했는데 그것마저 놓아주라니 염치가 있느냐면서 정 그렇다면 두명 중 하나는 놓아주겠다고 합디다. 오 사령은 두사람 중 한 명을 추첨을 해 정하도록 나에게 지시했소.』
채씨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분명히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추측컨대 나와 임 두령의 권유를 듣고 일시적이나마 심기가 다소 풀려 둘다 놓아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막상 실행에 옮기자니 잠재했던 원한이 폭발되어 이 같은 구차한 절충안을 내놓는 것 같았다.
나와 임 두령의 부탁을 전면 거절하자니 입장이 난처하고 다 들어주자니 화가 안 풀려 이 같은 농간을 또 부린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우선 한사람이라도 먼저 빼놓고 다음 대책은 또 그때 할 속셈으로 빨리 추첨을 하자고 재촉했다.
감방에 가니 두 사람이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채씨가 두 사람에게 추첨을 하여 한명만을 석방시킬 예정이라고 말하자 지 장군이 분노를 터뜨렸다.
『죽이려면 곱게 죽일 일이지 이 같은 장난으로 사람을 희롱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지 장군이 호령을 하자 옆에 있던 공동지가 빙그레 미소만 짓더니 갑자가 추첨용지 두 장을 빼앗아 손으로 비벼 찢어버린 뒤 엄숙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추첨으로 생살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만고에 없는 일이요. 그러나 기왕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꼭 죽여야 한다면 내가 기꺼이 죽겠소. 지 장군님은 빨리 나가십시오. 내가 죽음을 자청하는 이유는 나와 지 장군이 조국독립운동에 이바지하는 역할과 능력에 있어 너무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요. 내 한 몸은 죽어도 괜찮으나 지 장군의 목숨은 우리 한민족의 것이나 다름이 없소.』
불과 24세 밖에 안된 청년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 소리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가유명사삼십년부지」라는 옛말이 있듯이 이제까지 알아오던 공진원과는 또다른 그의 참모습을 대하는 것 같아 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지 장군도 그만 공동지를 얼싸안고 통곡을 터뜨렸다.
구국군 장교들도 모두 눈시울을 붉히며 자리를 피했다.
나는 공동지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필사적으로 구출할테니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고 마침내 지 장군과 함께 감방 문을 나왔다.
독립군 본부로 돌아오자 우리 둘은 공동지의 구출문제를 즉각 논의했다.
나는 공동지의 석방을 보류한 사람이 채씨니 만큼 그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만 하면 일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지 장군이 무슨 비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다소 일시적으로 비굴한 것 같지만 지 장군이 채씨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특청을 하면 반드시 그의 감정이 움직여져서 공동지 석방에 동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자해지라는 말대로 채씨가 꾸민 일이니 해결은 채씨 만이 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지 장군은 원래가 교항한 기습이 많은 사람이라 나의 이 같은 말에 얼굴을 붉히며 정색을 한다.
『그같은 놈에게 어찌 그같은 비굴한 짓을 할 수 있소. 일을 위해 다소 말을 공손히 할 수는 있으나 행동까지 그렇게 저자세를 보일 수는 없소』
나는 즉시 이 말을 받아 『지 장군은 과거 한나라 한신의 고사를 잊으셨단 말입니까』라고 힐문했다.
한신이 동네 부랑배들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 들어간 것은 다 큰 일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린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우리는 공동지의 구출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지 장군도 나의 설득에 감복하여 같이 채씨를 찾아갔다.
사전의 각본대로 지 장군이 채씨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그간의 협조에 대해 치하를 하고 공동지의 목숨이 당신 손에 달렸으니 선처를 부탁한다』고 하자 채씨는 안색이 금방 달라지면서 나와 지 장군을 자기 집에 머무르게 한 뒤 『잠깐 나갔다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불과 30분이 못돼 채씨는 되돌아와 공동지의 석방결정을 우리에게 알렸다.
이 얼마나 기다리며 마음 죄었던 일이었던가.
이로써 구국군에 체포돼 무장해제를 당했던 한국독립군 전원이 무사히 석방됐으며 빼앗겼던 무기도 이후 3차례에 걸친 교섭 끝에 모두 되돌려 받았다. 그러나 오의성 사령부와 독립군과의 이 사건은 끝내 한·중 연합군을 갈라놓게 된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가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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