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루지」의 실력자 「키우·삼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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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크메르」에서 공산군이 승리하는 경우 「론·놀」을 대신, 새 정부를 장악할 사람은 「크메르·루지」군 사령관인 「키우·삼판」인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외부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는 「론·놀」에 의해 축출된 「시아누크」공이 북경에 세운 망명 정권의 부수상 겸 국방상으로 군 최고사령관의 직책도 갖고있다.
「키우·삼판」은 10년 전 「시아누크」체제 하에서 청년각료로 일하기도 했으나 「시아누크」가 좌파세력을 탄압하기로 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지하에 들어가 「크메르·루지」의 간부가 됐다. 이런 그가 5년을 끈 내전의 결과 이제 「크메르」를 통치하게 될 반정세력의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로 변모한 것이다.
「키우·삼판」은 27년 「캄보디아」남부 「간다르」주에서 태어나 14세 때 「프랑스」에 유학했다. 「파리」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재불 중 「캄보디아」학연 서기장을 지내는 등 일찍부터 좌파논객으로 주목을 끌었다.
50년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시아누크」가 이끄는 정치조직이었던 「상쿰」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62년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얼마 후 「칸들」내각 때 상업상으로 기용됐다.
그는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청렴결백한 생활로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던 동료와 부하들을 당혹시켰다. 「크메르」인 치고는 드물게 얼굴이 하얀 동안,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유화한 인상이지만 강직한 성격의 외유내강형.
「키우·삼판」의 운명은 지난 66년 제1차 「론·놀」내각이 등장하면서 크게 바뀌었다. 친미 「론·놀」내각의 등장으로 「상쿰」안에서 좌우양파로 갈려 대립이 격화됐을 때 「시아누크」는 좌파를 탄압키로 했다. 이렇게 되자 「키우·삼판」은 신변의 위험을 느껴 67년 봄 「시아누크」 타도를 선언하고 지하에 들어가 과격파인 「크메르·루지」의 간부가 됐다.
그런 후부터 「키우·삼판」의 행방은 외부에서 전혀 알 수 없었고 항간에는 그가 비밀 경찰에 의해 처형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키우·삼판」에게 다시 전기가 찾아왔다. 70년 「론·놀」의 「쿠데타」로 「시아누크」가 축출 당한 것이다. 「시아누크」는 북경으로 망명, 「론·놀」타도를 외쳤고 이때 「키우·삼판」은 「크메르·루지」를 이끌고 「시아누크」아래 들어가 「론·놀」정권과의 무력투쟁을 벌여 왔다.
「키우·삼판」은 「시아누크」 망명정권아래서 부수상으로 있지만 「시아누크」가 조국을 떠난데 반해 그는 줄곧 국내에서 전투를 이끌어왔기 때문에 실권이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평. 「키우·삼판」은 군 훈련의 경험이 전혀 없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군인지도자 답지 않게 여성적인 성격의 일면도 있으나 때로는 난폭하기도 하다. 그는 농민과 반군을 중공식으로 조직하는데 성공한 뛰어난 조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붉은 「캄보디아」의 새로운 위정자로 등장할 「키우·삼판」의 5년간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캄보디아」의 국토와 7백만 국민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주목거리다.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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