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스페인 문단의 한국시인 민용태씨>(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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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침내 여기 네가…
네가 너구나.
하많은 눈길, 입술, 타는 간장마다
아픈 대기의 푸른 뱃속마다
어여쁜 한 가닥 숨길로 살아
무시로 죽어 쌓이는 잿더미
그 세월 한 가운데
정확한 너의 눈을 뜨고
부질없는 기다림으로 약속한 이 시간에
아장이며 내 앞에 오는 것
부서질듯, 허나
뜨겁디뜨겁게
품에 오는 너.
하늘에서 낳아 땅에 피어 가는
하나 산 기억이 있어
너와 함께 땅은 다시 푸르르다.
-Tierra Azul(푸른 대지)-
우리말로 씌어진 시가 아니다. 『한국어로 시를 쓸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회의는 하지만 비평능력은 늘었다』고 부끄러워하는 한국인이 「스페인」에서 발표한 「스페인」시다.

<한국에서도 시작하던 「신인」>
「마드리드」 생활 7년 동안 서울서 「신인」으로 시작활동을 하던 민용태씨(32)는 무던히도 변했다. 시작능력보다 비평안이 높아졌다는 것은 시인으로서는 불행할지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어쭙잖아하며 자위한다.
민씨의 변화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시작활동에서 두드러진다. 언어=시어가 바뀐 것은 말고라도 그의 바탕을 이루어오던 강렬한 「페시미즘」, 직관적인 자조의 분위기가 어느 결에 스러지고 있다.
너는 무엇인가/너는 무엇을 하려는가/이 차가 와진 너와 나의 침실/이 때아닌 갈바람 바람…/십자가를 잃은 너의 순교여/국민을 잃은 네 나라의 자유여/너는 이대로 묵살되어도 좋은가/너는 이대로 박제되어도 좋은가.
-선고(『창작과 비평』 68년 봄호)-
이처럼 화끈하던 그의 시어는 「스페인」어로 변형되면서 그 붓끝은 부드러운 「문학용어」를 찾아내고 있다. 민씨의 이러한 변이는 그러나 처음 「스페인」어로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그동안 60여편의 시를 발표, 두 권의 시집으로 엮어내면서 다듬어진 결과다.
『벌거숭이』(71년), 『푸른 대지』(74년) 두 권의 시집을 발간한 민용태씨는 색다른 시인으로서 「스페인」시단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정독해야 할만한 흥미있는 시 세계의 출현』(「스페인」의 대표적 일간지 「아베세」지 71년6월14일자), 『이 시인에게 존재란 감정의 「레퍼터리」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 내면생활의 시적인 배열』(「마드리드」방송 71년 5월)이라는 평을 받던 시인이 불과 3년만에 『동양적인 정신의 기틀에서 신비적인 아름다움을 현대의 시의에 맞도록 구현』(문학비평지 「에스타베타」74년9월)한 시인으로까지 탈바꿈한 탓이다.

<마드리드대서 비교문학 연구>
그러나 민씨는 시인이라기보다는 학생으로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비교문학을 공부하러 와서 국립「마드리드」대학에 『「스페인」 현대문학에 미친 동양문학의 영향』이라는 박사논문을 제출하고 있는 그는 자기가 시작에만 몰두하지 않기 때문에 시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몹시 두렵단다. 학비·생활비를 버느라 낮에는 중·고등학교에 나가 영어와 세계문학을 가르치고 저녁이면 태권도 교습(민씨는 태권도 3단)을 하다보면 시작을 할 짬은커녕 논문 준비할 시간도 없어 쩔쩔매는 터라 몹시 안타깝다는 이야기다.
민씨는 처음부터 「스페인」어로 시작활동을 하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스페인」에 한국 시를 소개한다는 기분으로 자신이 서울서 발표했던 작품을 「스페인」어로 다시 다듬어 「포에시아·에스파뇰라」라는 시 지에 실었다. 「스페인」 국립예술원에서 발간되는 이 나라 최고·최고의 시 전문지다.
서울의 「창작과 비평」지에 실었던 『우화』를 Fabla라는 이름으로 세편을 발표했다. 69년4월, 그가 「스페인」에 온 지 반년도 못되었을 때다.

<반년만에 스페인어로 발표>
채 익히지 못한 외국어로 시를 쓰는 「당돌함」이 그에게는 지금까지 그가 겪은 세계와는 전혀 다른 가능성에 눈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의 작품을 접한 「스페인」문단의 반응은 그 자신 당황할 만큼 민감했다.
처음에는 몇몇 동인지 활동을 하는 「그룹」에서 작품을 보내달라는 청탁이 왔다. 민씨는 주저하면서도 틈틈이 모아두었던 시상을 가다듬어 응했다. 이러한 민씨의 활동이 이곳 「저널리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따금 있는 외국인의 말재간 정도로 여기다가 그의 시작활동이 거듭되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논하는 시인·비평가의 의견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말이 없었다./구름과 땅 사이에 그저 분노한 고깃덩어리(중략)/내게 무슨 죄가 있는가/내가 무슨 죄인인가/목숨을 치르려고/거칠고 굳은 이내 살갗에서/피를 얼마나 더 흘리란 말인가.
-A Cuerpo Limpio(벌거숭이)-
71년 민씨는 이 시제와 같은 이름의 시집을 출간하면서 자못 눈을 끌었다. 그가 산문적인 시어로 「스페인」어를 정확하게 구사했다는 게 장점이었겠지만 그가 한국에서 겪었던 전후세대의 고뇌가 혹독한 내란을 겪었던 「스페인」사람들의 고뇌와 흡사하여 공감을 주었던 게 큰 이유였던 것 같다고 민씨는 말한다. 【마드리드=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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