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도미노이론"… 그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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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도차이나」사태가 급전함에 따라 미국정부 고위층은 또 다시 「도미노」이론을 들먹이고 있다. 「도미노」이론이란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공산화되면 그 주변국도 차례로 공산세력의 수중에 떨어진다는 논법이다.
이는 1954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월남에 대한 군원을 승인 받기 위해서 사용한 신용어로 그 후 상당기간 미국 외교정책의 중요지침이 되었다.
「아이크」는 월남이 적화되면 동남아, 일본·대만·「필리핀」, 그리고 호주 등의 순으로 공산세력의 수중에 떨어져 마침내 「자유세계」의 안보가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은 「자유세계」의 안보를 위해서 월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군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대 세계전략으로 채택된 이면에는 50년대가 미·소 초강대국의 열띤 「냉전기」였다는 배경이 깔려있다.
2차대전후 중국 본토가 중공에 장악되고 이어 중·소 우호동맹을 기초로 한국전 등이 일어나 공산세력의 호전성이 한창 드러나던 때에 54년 「디엔비엔푸」의 함락을 맞았다는 일련의 사태가 「도미노」 이치의 실례라 지적되었다.
60년대 미국이 월남전에 직접 개입했던 것도 이런 논리의 연장에서 실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동서양 진영의 화해기운이 현저해졌고 ▲중·소간의 이념 및 국경분쟁이 심화 된데다 ▲특히 그러한 결과로 미·중공간의 화해가 급진전했다.
따라서 민족단위를 초월해서 일사불란한 국제 공산세력이 존재한다는 「도미노」이론의 대전제는 필연적으로 퇴색되었다.
70년대 미국은 「아시아」방위의 「아시아」화라는 「닉슨·독트린」에 의해 월남에서 군을 철수시켰으나 최근의 인지사태는 최악의 사태로 줄달음치고 있다.
이에 「포드」 미 대통령은 「크메르」 추가 군원 모색에 대한 지지 요청을 하면서 『이러한 잠재적 사태발전은 소위 「도미노」이론을 상당히 정당화하는 것 같다』고 말해 다시 「도미노」이론으로 돌아갈 듯이 말했다.
「포드」는 미국의 맹방들이 차례차례 미국의 공약 혹은 미국과의 조약에 대한 신의를 잃게될 경우 「미국」의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크」와 「포드」는 다같이 「도미노」이론을 들먹이지만 거기에는 50년대와 70년대의 상황을 각각 반영하고있다.
즉 「아이크」는 미·소 초 강국의 세계쟁패시대에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자유세계」 의 패자로서의 미국을 대변하고 있다. 한편 「포드」는 인지사태의 결말이 어떻든 다만 세계에 대한 미국 공신력이 실추될 경우 쫓기는 「미국」을 말하고 있다.
「포드」에 대한 반격도 과거 세계경찰국가로서의 미국과 같이 무조건 덤벼들 것이 아니라 전략적 가치에 따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어서 「포드」와 「아이크」 만큼의 차이를 반영한다.
시사평론가 「레스턴」은 『각 우방이 현재 미국의 행동에 대해 품고 있는 회의는 미 정부의 용기가 아니라 그 판단』이라고 하면서 동남아를 구주·중동 및 일본과 같은 전략적 중요지역과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키신저」 국무장관은 3월 36일 『미국은 지원을 보류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항복을 강요하고있다』고 말한 후 미국은 다만 향후 3년 간 약20억「달러」의 대 인지원조만 추가 제공한다면 미국의 대 인지공약은 일단락 된다고 말했다.
또 「슐레징거」 국방장관은 월남이 공산화되더라도 여타지역에 심리적 측면 이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포드」정부는 사실 미국의 대외 공신력이 차례로 넘어진다는 뜻의 「도미노」 이론으로 그 뜻을 변질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나라가 차례로 넘어진다고 한 과거의 이론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60년대의 「도미노」이론을 허구로 만드는 또 하나의 사태발전은 「크메르」와 월남에 대한 압력가중의 반작용으로 주위국가들이 「하노이」와 배경에 외교적으로 접근하는 현상이다.
초 강국이 결국에는 자기이익만 추구한다는데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불신은 그들로 하여금 자주국방태세에 따른 대 중공·월맹관계 정상화에로의 박차를 가하게 했다.
「말레이지아」가 74년 중공과 처음으로 수교한 이래 반공국가들인 태국·「필리핀」· 「싱가포르」가 차례로 사절단을 북경에 파견, 관계정상화에 따른 제 문제를 협의하기에 분주한 형편이다.
따라서 비록 「크메르」와 월남이 공산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여파로 다른 인접국가가 차례로 넘어갈 가능성은 적어졌지만 동남「아시아」 일대가 중공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게 될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 그것은 「파리」 평화협정 때 「키신저」가 이미 다변 세력권 개념에 따라 인정한 새 세력판도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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