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노래 소리 끊기고 편싸움만 하는 서울대 성악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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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상화
사회부문 기자

“학과 내 파벌과 비리 많다는 거 다 알아요. 하지만 우리들이 뭐 때문에 월 수백만원 레슨 받으며 경쟁 뚫고 여기 왔겠어요. 좋은 스승에게 배우려는 거예요. 서울대 학생으로 있는 기간은 고작 몇 년인데 교수들은 자기 사람 뽑겠다고 싸우기만 하고….”

 26일 만난 서울대 성악과 학생 A씨의 하소연은 2시간가량 이어졌다. A씨는 3월부터 시작할 신학기에 제대로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됐다. 지도교수가 다음 학기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신임 교수에게 배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20여 명의 학생도 뿔뿔이 흩어져 지도교수 없이 강사에게 배워야 할 처지라고 한다. 성악과 교수들의 이전투구 유탄이 학생들에게 튄 것이다.

 교수 정원 8명의 성악과는 현재 5명으로 파행 운영 중이다. 2011년부터 3명이 파면·정년으로 퇴임한 데 이어 28일엔 윤현주 교수가 정년퇴임한다. 하지만 내부 분란으로 신규 채용된 교수는 1명에 불과하다. 10개월간 논란이 계속됐던 신모(41·테너)씨 임용은 25일 무산됐다. 한 교수는 제자 성추행과 불법과외 의혹으로 신학기 수업 여부가 불투명하다.

 신학기가 다가오자 학생들이 직접 나섰다. 지난달 성악과 학생 76명은 "이번에도 교수 공채가 무산돼 강사에게 수업받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교수 충원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음대 학장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개선은커녕 협박이 돌아왔다. 청원을 준비한 한 학생은 성악과 강사로부터 "빨리 철회해라. 너 인생 끝이다.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는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

 결국 서울대 단과대학생회 연석회의는 26일 "공채 과정의 잡음으로 학생 교육권이 박탈되고 있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석회의는 성명서에서 ▶2013년 1학기 공채에서 한 교수가 음대 학장실에 무단 침입해 서류를 훼손한 행위 ▶내정자 밀어주기에 대한 의혹을 구체적으로 제기했다. “학생을 협박한 강사를 파면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학생 143명이 듣는 서울대 성악과 수업은 이미 기형적이다. 2011년 성악과 K교수가 제자를 폭행해 파면되며 1학년 신입생은 전임교수에게 배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27일 서울대 보직교수와 음대 학장이 모인 비상대책회의에서도 별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회의에 참여한 서울대 관계자는 “빨리 의혹을 해소하고 논란이 된 채용규정을 정비할 것”이라고만 했다. 당장 5일 후 새 학기가 시작되는 급한 상황에 나온 대책치곤 구체성이 없다. “성악과 한 과 때문에 학교 전체가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지경”이라는 이야기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이상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