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객실만 4만 개 … "한 해 500만 명 안 오면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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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불 꺼진 소치가 떨고 있다. 빙판과 설원을 뜨겁게 달군 세계 각국의 선수단과 응원단·취재진은 떠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치 올림픽을 통해 ‘강한 러시아’를 보여주며 정치 기반을 다졌지만 소치의 앞날은 불안하다. 17일간의 올림픽이 끝난 뒤 소치에 남은 건 4만 개가 넘는 호텔 객실과 4개의 스키 리조트, 1개의 대형 스타디움, 5개의 실내경기장, 700개의 훈련장, 354㎞에 이르는 새 도로와 철도다. 푸틴이 2007년 올림픽 유치를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시한 비밀 카드는 “미개발지역이 많은 소치에 멋지고 세련된 새 경기장과 사회기반시설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오히려 소치의 파산을 불러올 수도 있는 큰 부담으로 남았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호텔들을 채우려면 매년 500만 명이 소치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소 여름 휴양지 소치를 찾는 관광객의 두 배 이상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은 객실 이용률이 당장 35~40%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소치 시내에 있는 래디손 리조트 총지배인 브라이언 글리손은 “미국과 유럽 관광객들은 비자가 필요하고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소치를 꺼린다”고 말했다. 결국 1억4500만 명에 달하는 내국인들이 찾아야 하지만 이마저 만만치 않다. 돈 많은 모스크바 부자들은 비행기로 소치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를 여름 휴양지로 선호한다. 일반 주민들은 소치에서 가장 저렴한 1성급 호텔에서도 머물기 쉽지 않다. 하룻밤 숙박비가 140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올림픽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푸틴과 러시아 정부가 소치의 앞날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시 개발 계획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 처음엔 소치를 남부 러시아의 중심도시로 육성하겠다고 했으나 흐지부지됐다. 실내 경기장들을 모두 해체해 북부도시로 가져가는 방안도 검토 단계에 머물고 있다. 소치에 카지노를 개장하는 계획도 확정되지 않았다.

 스위스 취리히대학 지리학과 마틴 뮬러 교수는 “소치의 진실은 호텔과 리조트 등 그 어떤 시설도 장기간 수익을 낼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24일자 기사에서 “지금 소치는 황금을 찾아 사람들이 대거 몰렸다가 금이 바닥나 버린 도시와 같다”고 보도했다. 4년 뒤에 열릴 평창 겨울올림픽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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