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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혜노믹스 vs 아베노믹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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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종수
논설위원

지난해 6월 무렵 일본은 이른바 아베노믹스에 열광하고 있었다. 아베노믹스는 장기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 경제를 살릴 묘약으로 통했다. 아베노믹스가 뭔가.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탈출과 엔고(高) 시정을 목표로 극한적인 수단까지 가리지 않겠다며 아베 총리가 꺼내든 필살기였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중앙은행 총재를 갈아치우는 무리수까지 동원해 무제한 양적완화(量的緩和)를 통한 돈풀기에 나섰고, 중앙정부의 대규모 적자에도 불구하고 공공사업을 동원해 정부 지출을 확대했다. 통화 증발과 재정지출 확대는 아베 총리가 일본 경제 회생을 위해 준비했다던 두 개의 화살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엔화 가치를 30% 가까이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고, 성장률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급상승했다. 주가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으며 성장률 전망도 덩달아 올라갔다.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뒤늦게 시동 건 근혜노믹스

 이에 비해 뒤늦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부터 인사 실패와 측근 추문으로 헤매고 있었다. 여기다 대통령직인수위가 제시한 경제정책 구상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야심 차게 내놓은 창조경제는 실체가 손에 잡히질 않았고, 일자리 늘리기와 복지 확대, 경제 민주화와 기업투자 활성화, 규제완화와 공정경쟁 확립 등 언뜻 보기에도 일관성이 없고, 심지어 상충되기까지 한 정책들을 산발적으로 내놓았을 뿐이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의 성격과 추구하는 목표를 상징할 만한 뚜렷한 비전이 없었다. 오죽하면 이웃나라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부러워한 나머지 우리도 근혜노믹스 비슷한 것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을까.

 그러다가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것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다. 1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틀을 제시한 것이다. 공공기관 정상화와 창조경제 구현, 내수 활성화를 골자로 한 경제혁신3개년 계획은 다소 급조됐다는 인상이 짙었지만 구체적인 성장목표와 실천의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이전의 접근방식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박 대통령이 25일 취임 1주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힌 경제혁신계획은 내용이 한층 짜임새 있고 실천방안이 보다 구체화됐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해 경제의 기초를 다지고, 창조경제를 통해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며, 규제완화를 통해 내수기반을 다져 균형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차 지적돼 온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를 근본적으로 쇄신해 지속가능한 안정성장의 궤도에 재진입시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통령이 임기 내내 직접 챙기겠다고 다짐까지 했으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이제야 제대로 된 ‘근혜노믹스’가 나온 셈이다.

 그사이 잘나가던 아베노믹스는 연초부터 뒤뚱거리기 시작했다. 엔저(低)로 수입물가가 올라 디플레이션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수출이 생각만큼 늘지 않고 성장률도 정체됐다. 여기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촉발된 신흥국들의 금융불안은 애써 구축해놓은 엔저(低) 기반마저 허물어뜨렸다. 이미 써버린 통화와 재정이란 화살 두 개의 약발이 1년 만에 희석돼 버리고 만 것이다. 문제는 아베노믹스의 성패를 좌우할 마지막 세 번째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기도 전에 추진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은 바로 구조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앞선 두 개의 화살이 일본경제의 추락을 막기 위한 단기 대증요법이라면, 세 번째 화살은 일본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중장기 원인치료다. 당연히 고통도 크고 저항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아베노믹스는 여기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규제완화는 더디기만 하고, 노동시장 개혁은 손도 못 댔다. 여기다 재정적자 개선을 위해 4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이 겹치면 겨우 살려놓은 성장의 불씨마저 꺼질 우려가 크다.

 이에 비해 뒤늦게 시동을 건 근혜노믹스에는 통화·재정수단을 동원한 단기부양책이 없다. 대신 모든 정책목표가 경제의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공기관과 재정·세제·노동시장의 개혁을 통해 기초를 다지고, 창조경제를 통해 경제활동의 방식을 바꾸며, 규제 혁파로 내수·서비스업을 새로운 성장의 원천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단기 대증요법을 전면에 내세우고 중장기 구조개선을 뒤로 미룬 아베노믹스와는 처음부터 접근방식이 다르다. 아베노믹스가 화살 세 개를 준비해 순서대로 쏜 것이라면, 근혜노믹스는 화살을 아예 세 다발 준비해 일제 사격을 하는 신기전(神機箭) 격이다.

실천 의지가 성패의 관건

 문제는 실천이다. 근혜노믹스가 아베노믹스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계획을 잘 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성과를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제시한 3대 전략과 15개 핵심과제는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는 것이 없다. 이미 칼을 빼든 공공기관 개혁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추진하겠다는 노동시장 개혁도 반발과 저항이 거셀 것이 뻔하다. 규제 혁파 역시 앞길이 험난하긴 마찬가지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이 주춤거리는 것만 봐도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어렵다고 주저앉으면 아베노믹스와 다를 게 없다. 근혜노믹스의 성패는 결국 대통령의 실천 의지와 리더십에 달려 있다.

글=김종수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